SK그룹의 전기차 배터리회사인 SK온은 요즘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에 난항을 빚고 있다. 투자 유치 규모를 4조원에서 2조원대로 줄이고 상장 때까지 이자율은 연 5.5%에서 7.5%로 대폭 올렸는데도 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최태원 회장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증시 상장 막차를 탄 LG에너지솔루션은 10조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SK온은 간발의 차이로 7.5% 이상의 금융 비용을 쓰면서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초(超)인플레이션과 고환율, 고금리 영향으로 주요 대기업마저 돈줄이 마르고 있다. 삼성 450조원, SK 247조원, LG 106조원 등 10개 그룹은 앞으로 5년 동안 1000조원 넘게 투자해 새로운 사업 기회와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이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이 고금리 시대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연초 1%였던 기준금리가 3%대로 치솟고,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여파까지 겹쳐 국내 주력 대기업마저 자금 경색에 시달리는 것이다.
LG그룹은 최근 핵심 계열사 LG유플러스가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에서 1000억원 규모의 주문만 들어온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신용등급 AA인 LG유플러스의 회사채에서 수요 미달이 발생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한화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화솔루션도 최근 1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한 수요 예측에서 130억원의 매수 주문만 들어왔다. 올 1월만 해도 23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7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렸는데, 1년도 안 돼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기업들은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8조1219억원인 데 비해 내년 만기 도래 회사채 규모는 69조9589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그룹 CFO는 “한국은행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정부는 자금 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긴급 자금을 풀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정부는 50조원을 시장에 풀겠다고 했지만 돈맥 경화를 막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들의 돈맥 경화를 막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