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팀코리아가 UAE(아랍에미리트)에서 건설·운용 중인 바라카 원전. 한국형 원전인 APR 1400을 최초로 수출한 곳이다. 지난해 4월 1호기(맨 오른쪽), 올 3월 2호기(오른쪽 둘째)가 차례로 상업 운전에 들어갔으며, 3호기(왼쪽 둘째)도 지난 6월 운영 허가를 받고 내년 상반기 가동에 들어간다./한국전력공사 제공

폴란드 원전 수출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이은 13년 만의 한국형 원전 수출이자 유럽으로의 첫 수출이 된다. 한국 원전은 UAE 이후 수차례 수출 도전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17년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에 나서 우선협상자 지위까지 확보했지만 무산됐다. 앞서 2013년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이 핀란드 올킬루오토 4호기 입찰에 참여했지만, 발주 취소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 8월엔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에 참여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원자로가 아닌 기자재 공급, 주변 건물 건설에 참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UAE와 같은 원전 수주와는 차이가 컸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원전의 폴란드 수출은 유럽은 물론 중동·아프리카로 원전 수출 기회가 크게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형 원전 경제성·운영 능력에 좋은 평가

그간 글로벌 원전 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수주를 휩쓸어왔다. 그런 러시아와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 주춤하는 사이 유럽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한국형 원전의 경제성이 부각된 게 폴란드가 한국을 택한 이유로 꼽힌다.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올해 가동을 앞둔 신한울 1호기까지 지난 40여 년간 총 27기를 꾸준히 건설·운용해 온 한국 원전의 경제성은 미국·프랑스 같은 경쟁국들을 압도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인 APR 1400의 kW(킬로와트)당 건설 단가는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 미국(5833달러)의 45~60% 수준이다. 미국의 주력 수출 모델인 1000㎿급 AP1000과 비교하면 발전 용량은 40% 큰데도 사업비는 적게 든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을 통해 해외에서도 건설 능력을 인정받은 것도 도움이 됐다.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바라카 원전은 지난해 4월 1호기, 올 3월 2호기가 차례로 상업 운전에 들어가며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3호기도 지난 6월 운영 허가를 받고 내년 상반기 가동에 들어간다.

반면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보글 원전 준공을 계획보다 4년 지연시켰다. 프랑스 EDF가 핀란드에 짓는 올킬루오토 3호기도 당초 일정보다 13년 늦게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오랜 건설 기간이 필요한 원전은 공사 기간이 곧 돈인데 해외 업체들은 잦은 설계 변경과 기기 제작 결함 탓에 공사 기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비용도 수배씩 증가했다”면서 “한국 원전 건설 능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검증을 마쳤다”고 말했다.

한국형 원전이 들어설 폴란드 석탄발전소 - 폴란드 퐁트누프 석탄발전소 전경. 내년 이 발전소가 폐쇄되고 이 부지에 한국형 원전을 짓게 된다. /한국수력원자력

◇유럽 첫 진출… 원전 10기 수출 탄력

한수원과 폴란드 제파크, PGE 3사는 건설 예상 부지에 대한 지질 공학, 내진, 환경 조건 분석을 진행한 뒤 연말까지 원전 건설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자금 조달은 수출입은행이 상당 부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그 밖에도 다양한 소스를 동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수원이 참여하게 되는 폴란드 원전 운영사의 경우 폴란드 측이 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방침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기존 화력발전소에 원전을 짓는 것이어서 주민 수용성 측면에선 관광지 인근에 있는 폴란드 정부 주도의 원전 건설 사업(미 웨스팅하우스 수주)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원전 10기 수출 목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지난 6월 나토(NATO) 정상 회의 때 대통령이 직접 APR 1400 홍보 책자를 보여주면서 폴란드 대통령을 설득했다”며 “8월부터 실무 회의를 진행한 끝에 2개월 만에 MOU와 LOI를 맺게 됐다”고 밝혔다.

폴란드 원전 수출로 지난 정부에서 고사 상태에 빠졌던 원전업계의 기대감도 커졌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EU(유럽연합) 택소노미(Taxonomy·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포함되면서 유럽 금융 시장에서 원전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도 유리해졌다”며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이 뛰고 공급마저 어려워지는 가운데 석탄발전을 원전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