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2년 만에 역성장하고 월간 무역 적자가 25년 만에 최장 기간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 위기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미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중고 상황에서 반도체 경기 침체까지 겹치자 올 들어 무역 적자 누적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위기 상황이 나아질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당분간 수출 증가세로 반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글로벌 경기 하강, 중국 봉쇄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전 세계 교역이 둔화하면서 우리 수출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버팀목 반도체가 쓰러졌다
대표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글로벌 수요 약화와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4% 감소한 92억3000만달러(13조원)를 기록했다. 월간 반도체 수출액이 1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4월(93억4000만달러) 이후 18개월 만이다. 산업부는 “IT 기기 수요 감소와 함께 서버 수요 둔화로 반도체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 반도체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10월 수출액이 44억7000만달러로 지난 6월에 비해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생산도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반도체 생산지수(계절 조정)는 320.6(2015년=100)으로 지난 분기보다 11% 줄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4분기(-23.6%)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반도체 생산 감소는 쌓여가는 재고와 무관하지 않다. 3분기 기준 반도체 재고지수는 237.1로 전 분기 대비 17.4% 급증했다.
이와 함께 15대 주요 수출 품목 중 11개 품목의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석유화학(-25.5%), 철강(-20.8%), 바이오헬스(-18.7%), 컴퓨터(-37.1%), 섬유(-19.1%), 가전(-22.3%)에서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동차(+28.5%), 이차전지(+16.7%) 수출액은 대폭 확대돼 역대 10월 수출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무역 적자 벌써 356억달러, 사상 최대
지역별로 보면 미국(6.6%), 유럽연합(10.3%)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출이 감소했다. 특히 대중 수출 감소는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인 아세안 지역도 디스플레이·석유제품 등 중간재 수출이 감소해 20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을 받고 있는 일본(-13.1%),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불안정한 중남미(-27%) 지역도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10월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가까이 늘었다.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109억3000만달러)보다 42.1% 증가한 155억3000만달러로, 전체 수입액 증가를 이끌었다. 산업부는 “원유·가스·석탄 가격이 지난해보다 크게 올랐고, 동절기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한 조기 확보 움직임으로 수입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자,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적자는 355억8000만달러(50조50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이어갔다. 이 기간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은 1587억달러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6억달러 늘어난 것으로, 이 액수는 올 누적 적자의 2배를 웃돌았다.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 무역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이날 ‘신성장 수출동력 확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과 해외건설, 중소·벤처, 관광·콘텐츠, 디지털·바이오·우주 등 5대 분야를 수출 재도약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표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1조원의 재정을 투입해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