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국의 무역수지는 지난 4월 이후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10월 기준 누적 적자가 356억달러(약 50조4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한 것은 물론, IMF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206억달러)의 두 배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는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이 급증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1587억달러로 작년에 비해 무려 82%나 급증했다. 에너지 수입 증가분이 무역 적자의 두 배에 달한다.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안팎으로 고공 행진을 하는 데다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은 작년보다 180%, 석탄 가격은 60% 넘게 폭등한 탓이다.
에너지 수입액 급증에 따른 무역 적자는 환율 폭등과 고물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실제로 10월 소비자 물가(5.7%)는 1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전기·가스·수도요금(23.1%) 탓에 다시 상승 폭이 확대됐다.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한전 적자가 당초 예상보다 10조원이나 많은 최대 4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가스공사 역시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한 미수금이 2021년 2조원에서 지난 6월 5조4000억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연말에는 1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한전이 운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3조49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시장 자금을 빨아들여 신용도가 AA등급인 우량 대기업들마저 회사채 발행을 못 하는 자금 경색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을 해결하려면 전기·가스요금을 한꺼번에 40~50%씩 올리거나, 국가 부채 증가를 무릅쓰고 수십조원의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에너지 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유럽행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그면서 유럽의 가스 비축량이 내년 3월에는 5%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또 유럽 국가들이 미국·호주·카타르 등 다른 천연가스 공급처를 찾아다니면서 이 세 나라에서 천연가스의 60% 이상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대규모 천연가스전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는 카타르에는 유럽 의회 의장을 포함해 주요국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세계 에너지 안보가 중동 전제국가의 손에 달렸다”는 자조(自嘲)까지 나올 정도다.
에너지 위기가 가중된 데에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등 어설픈 에너지 정책 탓도 크다. 문 정부는 5년간 원전보다 발전 단가가 5~6배나 비싼 LNG 발전량을 무려 34%나 확대하며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암 덩어리를 키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전력 사용량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에너지 효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여기에는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도 영향이 있지만 값싼 에너지에 익숙해진 탓에 에너지 효율에 대해서는 무신경했던 게 더 큰 요인이다.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절감을 위해 난방 온도·조명 제한, 공공 건물 온수 중단, 심지어 샤워 시간 제한 등 온갖 궁리를 짜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 역시 ‘탄소 중립’ 하겠다며 무연탄을 연료로 쓰는 고로(高爐) 가동을 줄이고, 전기로 사용을 확대하는 사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값싼 에너지 시대는 지나갔다. 특히 안보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지금, 첨단 테크 분야 기술력 확보와 함께 에너지 절감을 통해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국가의 핵심 역량이 되고 있다. 다가올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작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