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낮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 4개 동 연면적 14만㎡에 달하는 경북도청엔 대부분 공간에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공연장·세미나실이 있는 동락관 1층엔 직원 한 명만 자리를 지켰지만 1층 전체와 매표소에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본관 앞 인공연못 세심지 인근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작은 인공 분수 5개가 물을 뿜고 있었다. 산책로 곳곳에 위치한 천마·공룡 형상의 조형물과 나무에도 미관을 위한 조명이 설치돼 있었다. 실외 조명은 오후 6시 전후 해가 지면 점등했다가 오후 11시쯤 소등한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이 도청을 공원처럼 사용하다보니 미관과 치안을 위한 조명이 설치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호화 청사 논란을 빚으며 공공기관의 에너지 과소비가 문제가 됐지만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청사를 새로 짓거나 이전한 공공기관은 건물 규모를 크게 늘린 탓에 에너지 소비가 덩달아 늘었고, 오래된 기존 청사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무관심하다. 정부는 2020년 6차 에너지이용합리화 기본계획에서 공공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을 통해 2024년 건물 부문 에너지 소비를 2020년보다 3.8% 줄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건물의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는 독일·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에서도 에너지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전 지자체 9곳 에너지 소비 4배 늘어

7일 정부가 공공기관 등의 환경경영 강화를 위한 에너지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하는 환경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북도청은 지난해 12만1977GJ(기가줄, 줄은 에너지의 국제단위) 에너지를 소비했다. 옛 청사 마지막 해인 2015년과 비교하면 6.6배로 급증했다. 경북도의 구·신청사의 ㎡당 연간 에너지소비량(1.352GJ→1.304GJ)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올 상반기 기준 경북도 본청 직원은 청사 이전 당시 1319명의 두 배 수준인 2634명인데 직원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 10년 내 지어진 신축 건물은 단열 등 기술 발전 덕분에 20~30년 된 건물보다 에너지 소비가 10% 이상 감소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북도청사의 에너지 효율은 크게 떨어진 셈이다. 세종특별자치시청사의 에너지 소비량도 구청사보다 4배로 늘었고, 서울시청과 울산 울주군청, 충남도청도 기존 청사 때보다 3배 정도로 에너지 사용량이 늘었다.

지자체 청사뿐이 아니다. 같은 기간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 94곳 가운데 에너지 사용량 비교가 가능한 78곳을 분석한 결과 30%가량 에너지 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78곳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54곳이 청사를 옮기고 난 후 에너지 사용이 늘었다. 주요 공공기관 중 경기도 성남에서 대구로 본사를 옮긴 한국가스공사, 나주혁신도시에 새로 자리 잡은 한국전력공사·한국전력거래소 등의 에너지 소비가 옛 사옥보다 특히 많이 늘어난 곳으로 꼽혔다. 전력 사용량만 따져보면 가스공사와 한전KDN은 2~3배 증가했다. 한국동서발전, 한전KPS 등 전력 공기업은 물론 도로공사· 석유공사·토지주택공사 등도 이전 청사 때보다 80~340% 전력 소비가 급증했다.

◇호화 청사 논란 10년... 여전한 에너지 낭비

서울시청·성남시청·용인시청 등 2010년을 전후해 호화 청사 논란이 커지며 에너지를 과소비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부 지자체 청사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에너지 소비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1~5층이 통창 외벽인 용인시청에 들어서니 햇빛을 가리려 흰색 가림막을 쳐둔 상태였지만 창에선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10월 말이었는데도 약한 냉방이 가동되고 있었다. 용인시청에서 30년째 근무한다는 한 직원은 “남향 사무실은 햇빛이 들어 금세 달아오르고, 북향은 기온이 낮은 구조”라면서 “미관만 지나치게 중시해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용인시청은 2012년 사무실 창문을 이중창으로 보수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를 도입해 일부 자력 발전을 시도했지만, 건물 전면부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대형 공사 이외에는 에너지 절감 대책이 딱히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에너지 가격이 높든 낮든 에너지 절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등급 평가 등 전반적으로 에너지 효율 기준을 일반 상업용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