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찾은 런던 동부 켄트(Kent)주의 다트퍼드(Dartford) 시청은 한국의 여느 중소 도시 시청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5층짜리 2동 건물이었다. 1960년대 지어졌지만 최근 조명·난방 에너지 사용량을 5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다트퍼드시의 폴 코스터 국장은 “지난 8월 기존 가스보일러 기반 난방장치를 한국 기업(LG전자)의 최신 히트펌프식 난방장치로 바꿔 효율을 높인 덕분”이라고 했다. 약 6000㎡(약 1800여 평) 규모의 시청 건물을 기존 가스보일러로 난방하는 데 들었던 에너지 소비 전력은 400kW(킬로와트). 새 난방장치는 같은 수준의 난방을 하는데도 100kW 정도면 충분하다. 코스터 국장은 “여기에 난방은 물론 조명까지 날씨와 시간에 맞춰 조절하는 첨단 인공지능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 실제 에너지 소비 전력은 75kW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마른 수건 짜내는 유럽 공공기관
다트퍼드 시청은 건물 옥상에 100여 개의 태양광 패널을 깔아 자체 발전도 한다. 설비를 담당한 피터 퍼거슨 디렉터는 “발전설비 용량이 100kW에 달해 겨울에도 볕이 좋은 날이면 외부 전기를 끌어쓰지 않고도 난방이 가능하다”고 했다. 남는 전기는 건물 조명에도 쓴다. 또 밤에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값싼 심야 전력을 이용, 미리 난방 용수를 데워 놨다가 다음 날 직원들이 출근할 때쯤 난방을 가동해 또 한 번 에너지를 아낀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셈이다. 다트퍼드시 측은 “에너지 절감을 통해 탄소 배출도 줄이고, 시민의 귀한 세금도 크게 아낄 수 있으니 1석 2조”라고 했다.
독일에선 실험적 기술을 동원해 공공기관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있다. 독일 베를린 남쪽 데사우-로슬라우(Dessau-Roßlau)의 연방환경청(UBA) 건물이 대표적이다. 연면적 4만1000㎡의 이 건물은 가스나 전기를 이용한 별도의 냉난방 장치가 없다. 하지만 사시사철 영상 21도 내외의 공기가 4층 건물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지열 열교환기’를 이용한 첨단 공조 장치가 비결이다. 땅속 20m 아래로 내려가면 외부 날씨와 상관없이 온도가 일정한 현상을 이용했다. 지상에서 빨아들인 공기가 땅속 20~100m 깊이에 지그재그로 놓인 수천m의 관을 지나면서 차가운 공기는 따뜻하게, 뜨거운 공기는 차갑게 바뀐다. UBA 측은 “여름에는 영상 38도, 겨울에는 영하 20도에 이르는 외부 날씨에도 사무실 안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된다”며 “에너지 비용 ‘제로(0)’에 도전하는 빌딩”이라고 했다.
베를린의 연방의회(Bundestag) 건물 역시 1999년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절약 건물로 재탄생했다. 대형 발전기 4대를 갖추고 이 중 일부를 상시 가동하고 있다. 발전기는 전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열을 이용해 약 60도의 뜨거운 물을 만들어 건물 난방에 사용한다. 건물 천장의 돔 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본회의장으로 직접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했다. 맑은 날에는 회의장의 조명이 필요가 없어 조명용 전기를 40% 이상 절감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 정책 잇따라 내놓는 유럽
영국과 유럽연합(EU)은 건물의 에너지 소비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40%에 달한다는 분석에 따라 10여 년 전부터 건물의 에너지 절약을 의무화했다. 나라마다 실시 시기가 다르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은 건물은 아예 임대나 매매가 금지되는 규제도 곧 시작된다.
여기에 최근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공공기관을 비롯해 에너지 절감 정책을 추가로 내놓고 있다. 유럽의회는 최근 2030년 EU 에너지 소비량 14.5% 절감을 의무화하는 에너지 효율지침을 채택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에너지 사용량을 매년 2%씩 줄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프랑스는 2024년까지 에너지 사용을 10% 줄이고, 2050년까지 40% 감축을 목표로 한 에너지 절약 대책을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규모의 에너지 절약 대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