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서더크(Southwark)의 템스 강변에 있는 옛 런던시청사는 마치 유리로 만든 계란 같은 독특한 외형으로 유명하다. 2002년 완공 이후 빅벤 시계탑과 ‘런던 아이’ 대관람차, 타워 브리지와 더불어 런던의 대표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25일 찾은 이 건물은 사방 출입구가 굳게 잠긴 채 텅 비어 있었다. 안내 직원은 “시청은 지난해 12월 2일 뉴햄(Newham)의 다른 건물로 옮겨 갔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2000년대 들어 크게 유행한 전면 유리 외벽 건축의 대표적 사례로, 2012년 지은 서울시 신청사를 비롯한 한국의 수많은 지자체가 이른바 ‘통유리 청사’를 앞다퉈 짓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 주택부에 따르면 옛 런던시청사의 지난해 단위 면적당(㎡) 전력 사용량은 136.81 kWh(킬로와트시)이다. 서울시청사의 단위 면적당 전력 사용량(290.6kWh)의 절반이 안 된다. 서울시 인구는 997만명으로 런던 인구(954만명)와 비슷하고 면적은 런던보다 훨씬 작은데도 서울시청 청사 면적은 런던시청의 4배가 넘고 청사 건물의 에너지 효율마저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데도 2016년 취임한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임차료와 에너지 요금 등) 과도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시민 세금 낭비”라며 지난해 말 기존 건물 절반 규모인 뉴햄 신청사로 옮겼다. 옮긴 청사는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여름에는 차가운 공기가 자연스럽게 건물 내 공간을 순환토록 하는 최신 공조 시스템을 갖춰 냉난방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건물이다.

우리나라 공공 청사는 런던시와는 정반대다. 청사를 옮기면서 규모는 이전보다 몇 배씩 키우면서도, 에너지 효율은 등한시해 에너지 사용량도 그만큼 커졌다. 본지가 정부의 환경 정보 공개 시스템 등을 분석해보니 최근 10년 사이 청사를 옮긴 지자체 9곳의 청사 연면적은 이전보다 5.5배로 커졌고, 에너지 사용량은 4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에 대한 에너지 절감 기술 발달에도 단위 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 뿐이 아니다. 본지가 에너지 사용량을 공개한 정부 광역·기초단체와 정부청사, 공공기관 건물 269곳을 조사해보니 낙제 수준인 D·E 등급이 무려 155개로 57.6%에 달했다. 허은녕 서울대 교수는 “탄소 중립으로 향하는 국면에서 수명이 수십 년에 이르는 건축물은 설계와 건설 단계부터 에너지 사용량 감축과 효율화에 대한 고려가 가장 시급한 분야”라며 “우선 새로 짓는 공공 건물부터 적정한 청사 규모와 에너지 절감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