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물건(전기·가스) 값도 스스로 정하지 못하죠. 사장은 고위 공무원이 거의 도맡아 합니다. 정권이 공기업을 정권 하수인으로 만들어놨어요.”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 대학의 에너지 전공 교수는 “명색이 상장사인 한전·가스공사의 독립 경영이라는 건 먼 나라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부채 급증한 에너지 공기업

한전의 올해 적자는 30조~4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가스공사 역시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한 미수금이 연말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에너지 정책이 사상 최악의 실적 쇼크로 에너지 공기업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2016년 6만원을 넘었던 한전 주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선 폭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0년 3월 1만5500원 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2만원을 넘지 못한다. 가스공사 주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량 공기업이었던 한전이 쌓이는 적자를 회사채 발행으로 메우려다 보니 시중 자금을 대량으로 빨아들이면서 국내 회사채 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이 됐다.

한전 부채와 가스공사 미수금이 크게 늘어난 건 원료 가격 상승분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은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추진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탓에 인상 요인이 많았지만, 정치적 이유와 물가 급등 핑계로 사실상 동결됐다. 그러면서 문 정부는 5년간 탈원전 정책을 하며 원전보다 발전 단가가 몇 배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렸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면서 한전에 자금줄 역할까지 맡겼다.

특히 전기 요금을 심의·의결하는 전기위원회는 ‘5분 대기조’로 기다리다 정부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전락하며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전기 요금 조정은 한전이 개정안을 올리면 기획재정부와 산업부가 조정한 뒤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추인하는 식이다. 형식상으로는 산업부 장관이 최종 결정권을 가졌지만, 실상은 물가 주무 부처인 기재부가 결정하는 구조다.

에너지 업계는 전기위원회를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부에서 독립시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그간 기재부는 물가 안정 차원에서 사실상 전기 요금을 규제해왔는데, 어떤 선진국도 이렇게 전기 요금을 결정하지 않는다”며 “정치 논리 때문에 전기 요금 인상 시기를 미루고 놓치지 않도록 요금 인상을 독립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위원회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고 했다. 산업부는 전기위원회의 독립 기구화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제 겨우 기초 작업에만 착수한 상태다.

장기적으로는 전기뿐만 아니라 가스, 지역난방 등 에너지 분야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독립 에너지 위원회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미국(공익사업위원회·PUC), 프랑스(에너지규제위원회·CRE), 영국(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독일(연방네트워크기구·BNetzA) 같은 선진국들은 에너지 부처와 별도로 독립적인 에너지규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전기·가스에 대한 가격 결정이나 각종 규제·정책이 한 기관에서 이뤄져야 국가 에너지 전체 공급 정책 측면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