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구거리. 이곳 상인들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이사하는 사람은 없는데, 원자재와 환율 영향으로 가구 값은 올해 초보다 20% 올랐다”며 “하루에 손님 두세 팀 받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구단지 거리엔 인적이 뜸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거리인 이곳엔 60여 점포가 입점해 있다. 하지만 이날 문을 연 곳은 40여 곳뿐이었고 그나마 손님이 있는 매장은 1~2곳에 불과했다. ‘임대’라고 써붙인 빈 가게도 4~5곳이나 됐다. 한 가구점 앞에는 ‘50% 할인 판매’ ‘무인 판매, 이 계좌번호로 입금하고 가져가세요’라는 메모가 붙은 서랍장·책상 같은 가구들이 나와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는지 모두 먼지가 앉은 상태였다.

침대 매장을 운영하는 심모(64)씨는 “아파트를 사고팔고 해야 사람들이 이사하면서 가구도 새로 장만하는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니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과 가까운 마포구와 종로구의 경우 작년 10월 각각 84건, 43건이었던 아파트 매매 거래가 지난달엔 각각 16건, 4건으로 급감했다. 말 그대로 거래 실종 상태다. 30년 넘게 이 거리에서 가게를 했다는 송모(55)씨는 “이사 가는 사람들은 없는데 원자재와 환율 영향으로 가구값은 올 초보다 20% 올랐다”며 “이래저래 악재가 겹쳤다”고 말했다.

고금리·경기침체로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후방산업인 가구·인테리어 업계에 극심한 한파가 닥쳤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특수가 사라진 TV업계도 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 특수 기대는커녕 적자 축소에 안간힘을 써야 할 처지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보릿고개 닥친 가구·TV업계

상암동 한샘 사옥.뉴스1

국내 인테리어·가구업계 1위 한샘은 올해 3분기 영업손실 136억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3분기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줄었다. 주력인 리모델링과 가구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1%, 16.3% 감소했다. 이런 와중에 김진태 대표이사가 서울 상암동과 방배동 사옥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신사업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이 명분이지만, 한샘 직원들 사이에서는 “상암 본사를 매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사옥을 판다니 회사가 괜찮은 게 맞느냐”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같은 업종의 신세계까사도 홈퍼니싱 시장 위축으로 3분기 영업손실 58억원을 냈고, 현대리바트는 3분기 영업이익 5억1000만원으로 가까스로 적자는 면했지만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7.3% 급감했다.

TV 업계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올해는 4년 만의 월드컵이 열리는 해다. 하지만 대회 개막(11월 20일)을 앞둔 TV 업계는 월드컵을 앞두고 마케팅을 강화하면서도 자칫 손해만 더 커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보단 마케팅 비용 증가로 도리어 적자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이 TV를 향한 지갑을 꽉 닫으면서, 세계 2위 TV 제조사인 LG전자는 이미 2개 분기(2~3분기) 연속으로 TV 사업에서만 총 743억원의 적자를 봤다. 16년째 세계 1위인 삼성전자도 4분기엔 TV 사업에서 적자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계속… 대책 마련 고심

가구·TV업계는 부동산 빙하기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한샘은 이사하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는 수요를 겨냥해 부분 시공 강화에 나섰고, 다양한 인테리어 형태를 공유하고 제품 판매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리바트는 경기 영향을 덜 받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초고가 가구 시장 집중 공략에 나섰다. 삼성전자·LG전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수익 개선에 집중할 계획이다.

문제는 주택 거래량 감소가 당분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 주택 매매량은 41만779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만8948건)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특히 수도권 주택 매매량은 16만705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2% 감소해 감소폭이 더 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엔데믹 국면에서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데다 부동산 거래량까지 급감하며 인테리어나 가전 소비 심리까지 얼어붙었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관련 후방산업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라 내수경기 침체가 깊어지는 악순환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