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다. 롯데호텔은 지난 17일 보유 중인 롯데칠성음료 주식 27만3450주(2.72%)를 전량 매각했다. 회사 측은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다. 다음 날인 18일 롯데건설은 국내 은행 2곳에서 3500억원을 차입했고, 같은 날 롯데케미칼은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5000억원은 운영 자금으로, 6000억원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2조7000억원)에 보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롯데케미칼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롯데건설 지원을 위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이 100%를 보유 중인 현대렌탈케어 지분을 엠캐피탈(옛 효성캐피탈)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렌탈케어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비데 대여 사업을 하는 계열사다. 현대홈쇼핑으로선 홈쇼핑 매출이 주춤해지고 IPTV·케이블TV 사업자에게 내는 방송 수수료 증가로 영업이익마저 감소하는 상황에서 렌탈케어 지분 매각으로 유동성을 미리미리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대기업들이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시중 자금이 마르자 현금 확보 전쟁에 나섰다.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유 주식·부동산·자회사를 포함해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탄탄한 재무구조로 유명했던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전방위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데 대해 놀라는 분위기다. 재계 1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고금리로 금융 비용 부담은 커졌는데 경기 침체로 물건은 팔리지 않아 대기업마저 돈줄이 마르고 있다”며 “내년까지 ‘자금 혹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별 운용 자금 현황을 매일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비핵심 자산, 보유 부동산 등을 잇따라 매각하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울산 언양공장 토지와 건물 등을 1500억원에 처분한다. 회사 측은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재원 확보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최근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인천공장 토지를 부동산 투자·개발업체에 550억원에 매각했다.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KAL호텔을 950억원에 매각했고, HJ중공업도 인천 서구 원창동 토지와 건물을 770억원에 매각했다. 국내 1위 가구·인테리어업체 한샘은 서울 상암동 본사 사옥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보유 부동산을 자산신탁이나 부동산 관리회사를 통해 유동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동산을 깔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현금화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투자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첫 부동산투자회사(리츠)인 삼성FN리츠는 최근 12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삼성FN리츠는 삼성생명으로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타워과 서울중구 에스원빌딩 등을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자산운용도 그룹 부동산을 자산으로 한 한화리츠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운용 대상은 서울 여의도 한화손해보험 빌딩, 한화생명 노원사옥, 한화생명 평촌사옥 등이다.

증시 부진에 유동성 위기까지 겹친 증권업계도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다올투자증권은 태국 현지 법인 매각을 위해 여러 금융회사와 접촉하고 있다. 회사측은 “높아진 금융환경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일부 증권사는 단기차입금 한도를 높이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난 17일 단기차입금 총한도를 7조5900억원에서 8조5900억원으로 1조원 증액했고, 한화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도 각각 5000억원, 3000억원씩 증액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에 들어오는 돈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많은 상황에서 유사시 펀드런 사태를 막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