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올 3분기 3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3000%씩 증가한 1조6800억원, 2000억원을 기록했지만, 각종 금융비용 증가로 전체적으론 마이너스 성적표를 거둔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자본 잠식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재계 일각에서는 대한항공과 합병이 이뤄져도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항공 업계뿐 아니라 금호타이어, HJ중공업, KR모터스도 계속되는 영업적자로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돈을 갉아먹는 자본 잠식 상태다.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들이 치러야 할 금융 비용은 가파르게 늘고 있는데 이익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상훈

◇경영 지표 악화되는 20대 기업, 재고는 50% 늘고 영업이익은 25% 줄어

국내 대표 기업들의 경영 지표도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급감하고, 재고는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 경색까지 겪자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매출 상위 20대 기업의 재고 자산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만 해도 재고 자산 총액이 145조3000억원이었지만 올 3분기 217조9000억원으로 50% 가까이 늘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매출 상위 20대 기업은 국내에서 최우량 기업으로, 많은 중소·중견기업을 협력 업체로 두고 있다”며 “이들 기업의 재고가 1년 사이에 50% 늘었다는 것은 우리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대 기업 중 재고 자산이 줄어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삼성전자(51.6%)·SK하이닉스(122%)와 같은 IT 대기업뿐 아니라, LG화학(56.4%), 에쓰오일(48.7%), 기아(26.5%), 포스코홀딩스(26.2%) 등 다양한 업종에서 모두 급증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20대 기업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약 25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조6000억원)보다 25% 이상 떨어졌다. 포스코홀딩스, SK하이닉스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0, 60%씩 급감했고, 지난해 5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LG디스플레이는 7600억원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들어오는 돈은 줄고 재고만 쌓이다 보니 기업들 자금 사정 역시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부채비율은 치솟고 시중 자금까지 얼어붙자, 기업들은 ‘현금 확보’에 혈안이다. 롯데그룹을 비롯해, 현대백화점그룹·효성·한화 등 주요 대기업은 보유 주식·부동산·자회사 등 돈이 되는 것은 뭐든 팔고 있다. 투자 규모도 속속 축소하고 있다. 현대차·SK하이닉스는 투자를 줄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포스코그룹, 현대중공업, 한화 등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중견은 더 어려워… 중기 대출 금리 5% 넘봐, 파산도 70여 건 늘어

금리 등 각종 비용이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심하다. 대구 섬유 업체 대표 배모(63)씨는 “올 초 3%대였던 금리가 6~7%까지 늘어나면서 한 달 상환 이자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2배가 됐다”며 “도시가스·전기 요금 외에도 각종 화공 약품 등 원자재 가격이 줄줄이 올랐는데, 금리까지 오르니 돈줄이 계속 말라가고만 있다”고 했다. 배씨는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거나 담보로 잡아 추가로 돈을 빌리려 해도, 지역 은행들이 사양 산업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더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 은행 신규 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평균 대출 금리는 지난해 9월 3.05%에서 올해 9월 4.87%까지 치솟았다. 2014년 1월 이후 8년 8개월 만의 최고치다. 올 들어 10월까지 법인 파산 건수도 817건으로 작년 10월까지 748건보다 69건 늘어났다.

매출 1조원 이상의 중견기업들 역시 불필요한 자산을 처분하고 경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화장품 위탁생산 기업 코스맥스는 최근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을 철수하고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