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5년 넘게 멈춰 섰던 한빛 4호기가 다시 가동한다. 지난 7일 계획보다 5년여 늦게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1호기의 가동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남 영광에 있는 1000MW(메가와트)급 한빛 4호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정비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 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운영을 못 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규제 기관이 보조를 맞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 정부 취임 초부터 멈춰…5년 내내 중단
원자력안전위원회는 9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과 회의를 열고 한빛 4호기 임계를 허용했다. 임계는 원자로에서 핵분열 반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로, 임계 허용은 재가동 승인을 의미한다. 한빛 4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18일부터 시작한 정기 정비가 안전성 검증과 각종 추가 조사를 이유로 연장되면서 지금까지 5년 7개월 가까이 멈췄다.
한빛 4호기의 정기 정비도 본래는 다른 원전 정비와 같이 두 달 반이면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비가 한창이던 6월, 원자로를 둘러싼 콘크리트 격납 건물에서 공극(틈)이 발견되면서 ‘정비’는 ‘조사’로 바뀌었고, 이후 ‘탈원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대표 사례로 활용되면서 재가동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해 11월부터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합동조사단이 2년 넘게 조사를 진행했고, 이어 2020년 3월부턴 공기업인 한국전력기술이 구조 건전성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결과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원안위는 재차 검증을 요구했다. 프랑스 업체인 프라마톰의 검증에서도, 원안위가 맡긴 한국콘크리트학회의 검증도 통과하자 원안위는 다시 산하기관인 KINS에 재검증을 지시하며 재가동을 계속 미뤘다. 올 초 원안위 회의에 재가동을 위한 안건이 올라왔지만 이때는 지역 주민과 협의가 부족했다며 안건 상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11일부터 전력 공급 시작
원전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차례 평가와 검증을 거친 원전을 재가동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커졌고, 한빛 4호기는 ‘탈원전 폐기’를 내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반년이 지나서야 다시 가동에 들어가게 됐다.
원안위는 이날 재가동을 결정하며 “격납 건물의 구조 건전성을 확인했고 공극 보수 완료 후 임계 전까지 수행해야 할 87개 항목에 대한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격납 건물에서 발견된 공극 140개와 철근이 노출된 23곳에 대한 보수를 마쳤고, 격납 건물에서 기준 두께(5.4㎜) 미만인 모든 내부철판(방사성 물질 누출 방지용)을 교체했거나 안전성 여부를 확인했다. 한빛 4호기는 오는 11일부터 전력 공급을 재개할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빛 4호기에서 생산한 전기가 11일 오전 6시쯤부터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년 한빛 4호기가 가동을 중단하며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돌린 데 따른 손실은 3조원을 웃돈다. 이종호 전 한수원 기술본부장은 “올 들어 원자력과 LNG 발전의 구매 단가 차이가 kWh(킬로와트시)당 170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 손실만 해도 1000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한빛 4호기 재가동은 탈원전 폐기의 상징”이라며 “에너지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좀 더 빨리 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