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47)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이 13일 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승진 2년 만이다.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주의 손자인 최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고려아연의 오너 3세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4년 설립된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은·인듐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비철금속 제련 부문에서 세계 1위다. 그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던 최창근 회장은 명예회장이 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24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40대 젊은 리더가 경영을 맡았다”면서 “최 회장이 미래 50년을 책임질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신사업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 오너 3세 경영 시작

고려아연은 13일 오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안건을 의결했다. 최 회장은 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인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최 회장의 어머니는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그동안 고려아연 경영권은 최기호 창업주의 삼형제인 최창걸·최창영·최창근 명예회장 순으로 승계돼 왔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최 회장은 2007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으로 부임하면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고려아연의 호주 자회사인 SMC(썬메탈) 사장을 자진해서 맡아 기술 개발과 공정 개선에 주력해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탈출시켰다. 2018년에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7000만달러(910억원)를 달성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실적도 최 회장이 2019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이후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고려아연 매출은 2018년보다 45%, 영업이익은 43% 증가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과 함께 지난해 철강 수요가 폭증하면서 철의 부식 방지 제품으로 쓰이는 아연 매출도 늘었다”면서 “여기에 최 회장이 대표이사 취임 직후부터 추진한 물류 효율화, 원가 절감과 같은 시스템 개선도 실적 개선에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최 회장 취임을 계기로 고려아연의 신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앞서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2차 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3대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미 고려아연은 지난달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인 이그니오를 100% 자회사로 인수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고려아연, 영풍그룹에서 계열분리하나

재계에선 최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에서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아연은 고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 창업한 회사로 그룹 내 핵심 계열사다. 그동안 ㈜영풍·영풍전자·영풍문고는 장 창업주 일가가, 고려아연은 최 창업주 일가가 운영해 왔다.

현재 고려아연 최대주주는 장형진 영풍 회장과 ㈜영풍을 비롯해 영풍 측 우호지분이 31.4%이다. 그러나 최근 고려아연이 국내외 우호지분을 크게 늘리면서 지분 경쟁에 나선 모습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자사주 6.02%를 LG화학, ㈜한화, 한국투자증권, 세계 2위 원자재 거래 기업 트라피구라에 매각했다. 이들 모두 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최 회장 측 지분을 모두 합하면 27.7%로 영풍 측과 지분율 차이는 3.7%다. 이 외에 한국타이어(0.78%)·조선내화(0.2%)도 최 회장의 우호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에선 영풍그룹 내에서 사실상 돈 버는 기업이 고려아연밖에 없기 때문에 계열분리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철강업계 임원은 “㈜영풍에 지급하는 배당금만 매년 1000억원에 달한다”면서 “경영권을 가진 최 회장 입장에서는 대주주를 의식하지 않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더 과감한 투자를 하고 싶고, 거꾸로 영풍 입장에서는 알짜 기업을 그냥 내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