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대못이 잇달아 완공되고 있는 동해안 원전(原電)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완공했어야 할 동해안 송전(送電)선로 공사를 문 정부가 임기 내내 내팽개쳐 놓았던 탓에 전기를 생산해도 송전이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공장을 짓고 제품을 만들어도 도로가 없어 물건을 실어나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 업계에 따르면 강릉·동해·삼척 등 동해안 지역 석탄발전소 6기의 전체 발전 용량은 5314MW(메가와트·1000MW=1GW) 규모인데 전기 수요가 가장 많은 겨울에 들어서도 57% 정도인 3040MW만 가동 중이다. 구형 원전 2기 발전 용량과 맞먹는 2274MW를 가동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7일 경북 울진에 있는 1400MW급 신한울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서 동해안~수도권의 송전선로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자 불가피하게 석탄발전소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강원 강릉에서 경북 울진에 이르는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로 용량은 1만1000~1만2000MW 규모다. 경북 울진에 있는 한울1~6호기(5900MW), 양수발전(1000MW), 석탄발전 6기(5314MW)만으로도 송전선로는 이미 포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신한울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가면서 전기를 생산해도 송전은 불가능해졌다. 전력 당국은 발전 단가가 싼 원전을 우선적으로 가동하면서 동해안 지역 석탄화력발전소 6기 가동률을 50% 수준으로 낮췄다. 준공 6년 이내인 최신형 석탄발전기가 송전선로 용량이 모자라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기조 속에 주민 반발을 이유로 들어 송전선로 건설엔 손을 놓은 채 방치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에너지 위기가 확산하며 전 세계 각국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는 최신식 발전소를 지어 놓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헛발질이 에너지 위기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말 나온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21년 말과 2022년 말까지 각각 4000MW 규모 동해안 신규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선로 공사는 시작조차 못했다. 착공식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올 10월에야 열렸다.

앞으로도 동해안 지역에 원전과 석탄발전소가 잇따라 완공되며 문제는 더 커질 전망이다. 신규 송전선로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2025년과 2026년에야 송전이 가능하다. 반면 원전 신한울 2호기(1400MW)를 비롯해 석탄발전소 삼척블루파워 1·2호기(각 1050MW급)가 2023~2024년 차례로 가동에 들어간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설계 수명이 끝나는 2027~2028년 폐쇄하기로 했던 한울 1·2호기(각 950MW)와 공사를 중단했던 신한울 3·4호기(각 1400MW)까지 가동에 들어가면, 송전 문제가 커져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원전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재 계획된 동해안 발전소들이 모두 준공되면 전체 설비 용량은 현재 송전선로 용량보다 8000MW를 웃도는 2만MW에 이르게 된다”며 “1단계에 이어 2단계 신규 송전선로 건설도 당장 시급한 상황인데 현재로선 언제 착공할지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최신형 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업 진행 방식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공기업인 한전이 정부와 주민, 양쪽의 눈치를 보며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구조로는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송전선로 건설을 공기업인 한전에만 맡겨놓은 것도 지금과 같은 문제를 낳은 원인 중 하나”라며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민자 고속도로와 같이 민자 송전선로를 허용해 건설에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