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1월 1일부터 미국 미시건주(州) 배터리 단독공장 직원들에게 무료 건강보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대상은 임직원 전원과 이들의 부양가족까지 약 2000명에 이른다. 이전까지는 임직원과 가족들에겐 치과와 안과 비용만 제공했는데 앞으로는 의료비를 폭넓게 지원하는 것이다. 무료 건강보험은 미국 기업들도 도입률이 5%가 채 안 되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혜택이다.

LG엔솔이 이처럼 파격 복지 혜택을 도입하는 것은 현지의 극심한 인력난 때문이다. 미시건 공장의 경우 2025년까지 생산능력을 5배 늘리기 위한 증설 작업이 한창이라 직원을 상시 모집 중이지만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복지 혜택을 내세워 직원들의 근속을 장려하고 고급 인력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차와 반도체 등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배터리 및 소재 업체, 완성차 업체가 미국과 북미 곳곳에 공장 신·증설에 나서면서, 현지에선 일손 품귀 현상과 함께 치열한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업체들은 직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파격 복지를 도입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 인력 채용에 나서는 등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美, 완전고용 상태로 제조업 인력 부족… 전세계 업체 美로 몰려드니, 현지 인력 별따기 국내 업체도 전전긍긍

올해 북미의 경우 LG엔솔, SK온을 포함해 세계 5대 배터리 업체 중 4곳이 발표한 투자액만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 이 밖에도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총 6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 조지아주에 연산 30만대 규모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고,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LG화학은 지난 22일 미 테네시주 클락스빌에서 양극재 공장 건설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케미칼도 올해 7월 캐나다에 미 GM과 양극재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곳곳에서 대규모로 인력이 필요하지만 업체들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한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낮은 실업률이다. 이번 달 미국과 캐나다의 실업률은 각각 3.7%, 5.1%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로 평가된다.

현지 제조업 인력 풀(poool) 자체가 작은 점도 어려움이다. 미 제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제조업 종사자는 전체 생산활동인구의 약 8.6%로, 한국(1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 탓에 미국 내 제조업 숙련공이 적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한테 ‘한국이란 나라에서 공장을 지었으니 취직하러 오라’고 하면 당연히 잘 안 온다”며 “설령 신규 인력을 채용하더라도 생산 설비에 버튼 누르는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산직만큼 벌 수 있을 정도로 최저임금도 높다 보니 제조 업체들로선 사람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한국의 숙련된 인력을 현지로 데려가는 방안도 생각 중이지만 비자 문제 같은 난관이 적잖다. 도한의 포스코아메리카 법인장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애틀랜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생산직 인력 부족은 미국에 진출한 모든 기업이 직면한 문제”라며 “한국에 있는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올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해 대사관과 정부에도 계속 요청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센터 짓고, ‘의료 복지’ 만들고…미 정부까지 나서 인력 양산

북미 진출 업체들은 당장은 현지 인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각종 인사 정책을 도입 중이다. 치료비 제공, 건강보험 혜택이란 파격 복지를 도입하기도 하고, 교육센터를 만들어 체계적인 직원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

SK온은 최근 미국 켄터키주에 포드사와 배터리 합작 공장을 만들며 ‘블루오벌 SK교육센터’도 착공했다. 대학과 연계해 채용을 한다거나, 현지 한인 채용을 추진 중이다. LG엔솔은 내년부터 한인이 많은 LA와 뉴욕 등에서 미국과 캐나다 석·박사 졸업자(졸업 예정자 포함)를 대상으로 인재 채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 정부도 최근 배터리 인력 육성을 위해 직접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2일 첫 번째 ‘배터리 인력 이니셔티브’ 회의를 했다.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 육성을 위해 숙련된 배터리 인력을 키워내는 게 목적이다. 이 회의엔 LG엔솔, 삼성 SDI 등 국내 기업들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