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중국 CATL의 첫 해외 생산 기지인 독일 에르푸르트 공장이 최근 가동에 들어갔다. 내수만으로도 세계 1위를 달성한 CATL이 중국 밖에 세운 첫 공장이다. CATL은 독일 공장을 시작으로 헝가리, 미국 등지에도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시장뿐 아니라 급성장하는 유럽·미국 시장으로도 뻗어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제외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지켜온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3사로선 거대 공룡인 CATL과의 힘겨운 수주 전쟁이 본격화된다는 의미다.

/CATL 최근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중국 CATL의 독일 에르푸르트 공장. CATL이 중국 밖에 세운 첫 번째 공장이다.

◇중국을 넘어 유럽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CATL

2019년 착공해 18억유로(약 2조4000억원)가 투자된 CATL의 에르푸르트 공장은 최근 일부 라인에서 제품 출하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에 납품된다. 에르푸르트 공장 규모는 당초엔 연간 전기차 28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14GWh(기가와트시) 규모였지만 독일 정부 승인 과정에서 8GWh로 규모가 축소됐다. 하지만 독일에서 전기차 배터리 대량생산을 시작함으로써 CATL은 중국 이외 시장으로 고객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마티아스 젠트그라프 CATL 유럽 담당 사장은 “앞으로 독일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ATL이 독일에서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하자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는 유럽 시장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CATL은 글로벌 배터리 1위답게 규모의 경제 효과를 확보한 데다 주력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주력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CATL은 헝가리에 유럽 2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헝가리 데브레첸에 73억4000만유로(약 9조9000억원)를 투자해 100GWh 규모 공장을 2027년까지 짓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폴크스바겐그룹, 스텔란티스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들 완성차 업체는 모두 한국 배터리 3사의 주요 고객사다. CATL은 여기에 더해 유럽 제3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으며, 포드와 협력해 미국에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배터리 핵심 고객들, 유럽·中·日 기업에도 러브콜

CATL의 글로벌 공략 확대에 더해 한국 배터리를 써오던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다른 배터리 기업과 연대를 강화하며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럽의 최대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스웨덴)는 최근 볼보에 공급하는 배터리셀 생산을 개시했다. 노스볼트의 볼보 배터리 공급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업체가 삼성SDI가 주력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다 볼보가 삼성SDI의 주력 고객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성SDI의 최대 고객사인 BMW는 최근 중국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각형 배터리를 고집하던 BMW는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원통형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하고 CATL, EVE에너지 같은 중국계 기업과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BMW에 공급할 배터리 생산을 위해 최근 헝가리 2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삼성SDI로선 당혹스러운 변화다.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받는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는 최근 일본 파나소닉과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파나소닉은 루시드의 고급 세단인 루시드에어와 2024년 출시 예정인 SUV 그래비티에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LG엔솔과 북미 합작사 설립을 약속한 일본 혼다도 CATL로부터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전기차 100만대분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했다. SK온과 함께 미국 배터리 공장을 세운 포드도 최근 CATL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