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근무일인 2일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CEO(최고 경영진)들이 내놓은 신년사는 그 어느 해보다 비장한 어조였다. 새로운 목표 달성을 다짐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한 해 시작을 알렸던 예년과 달리 올해 신년사에선 기업마다 ‘위기’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그룹 총수와 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유례없는 글로벌 복합 위기 앞에서도 움츠리지 말고, 이를 기회로 삼아 도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혁신 주문

신동빈 롯데 회장은 올해를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과 불안’을 의미하는 영구적 위기라 규정하고 “당연하게 해왔던 일과 해묵은 습관을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새로운 롯데’를 만들자”고 말했다. 신 회장은 ‘생존을 위해 자기 혁신은 필수 불가결하며, 회사를 성장하게 하는 열쇠 또한 혁신하는 용기’라는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말을 인용하며 과감한 혁신을 주문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유통 사업은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위험을 직시하고 준비된 역량으로 정면 돌파 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이 곧 신세계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 회장은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올해를 위기 이후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성공적인 한 해로 만들자”고 했다. SK그룹 주요 CEO들도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생존 역량을 강화하자”(장동현 SK㈜ 부회장), “도전받을 때 더 강해지는 DNA를 기반으로 우리 모두 원 팀이 돼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레벨 업 하자”(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고 당부했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마무리해야 하는 주요 그룹의 신년사는 막중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사업을 키운다는 책임감으로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을 이끄는 글로벌 메이저 사업으로 키워나가자”며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함해 지속적인 신사업 확장과 사업 재편 같은 미래 지향적 경영 활동을 지원할 새로운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가 인체라면 항공업은 동맥 역할“이라며 “올해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큰 과제를 완수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 항공업계가 위축되고 우리의 활동 입지 또한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구자은 LS회장은 “풍력·태양광·수소에너지 사업, ESS(에너지 저장 장치)와 배터리·전기차 관련 부품 등 신사업에 8년간 20조원 이상을 투자해 2030년 현재의 2배 수준인 자산 50조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23년 경영 키워드… 생존 역량, 위기 대응 능력, ESG 경영

지난해 최악의 침수 사태를 겪었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이미 알려진 위기는 더는 위기가 아니며 위기라는 말에는 기회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며 신년사에서 위기를 7차례, 기회를 5차례나 언급했다. 최 회장은 포스코가 100년 기업으로 영속하기 위해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가치 제고와 조직 문화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의 공동 명의 신년사의 키워드도 ESG 경영이었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2023년은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본격화하는 원년”이라며 “친환경 기술을 우리의 미래 경쟁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올해 핵심 경영 키워드로 ‘강한 실행력’을 꼽았다. 권 부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효율적 업무 환경을 만들어 더 큰 미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수장들은 올해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구현모 KT 사장은 “통신망 장애를 장애가 아니라 재해로 여기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안전과 안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올해를 ‘AI(인공지능) 컴퍼니로 가는 도약과 전환의 해’로,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는 ‘미래 성장을 위한 변화가 꽃을 피우는 해’로 만들겠다고 했다. 코오롱그룹은 올해도 CEO가 아닌 최우수 사원이 발표한 신년사를 발표하고 ‘코오롱만의 성장 법칙으로 위기 너머의 기회를 향해 행동하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