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재고 상품 전문 쇼핑몰인 ‘리씽크몰’의 물류 창고. 약 1300㎡(400평) 규모의 창고는 3단 적재 선반으로 공간을 최대한 넓혔는데도 창고 구석구석까지 재고 상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상품을 살펴보니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아 반품 처리된 캔맥주·과자나 국산 미세 먼지 마스크 같은 소비재 재고부터 중견·중소 가전 회사의 전자레인지· 밥솥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영국 가전 제품 제조사 다이슨의 50만원대 무선 고데기, 정원용 갈퀴와 같은 재고까지 있었다. 가전제품의 경우 주로 홈쇼핑에서 팔리지 않거나 반품 처리된 상품이다. 리씽크몰 관계자는 “평소엔 매달 40억~50억원대 재고를 사들여왔는데 작년 하반기부턴 물건이 팔리지 않다 보니 재고 처리 문의가 10배 넘게 들어오고 있다”며 “이전보다 깐깐하게 물품을 선별해 매입하고 있다”고 했다.
◇과자부터 옷·가구까지 넘쳐 나는 재고
리씽크몰 물류창고에 쌓인 재고 상품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심해진 경기 불황 여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창고 한편에는 국내 한 식품 업체가 작년 핼러윈 한정판으로 출시했던 과자 상자 50개가 쌓여 있었다. 핼러윈 판촉 행사를 하지 못하고 거둬들인 재고를 10분의 1 가격에 리씽크몰로 넘겼다고 한다. 옆엔 팝콘 10개들이 상자 수백 개도 보였다.
유행과 계절에 민감한 의류 상품도 최근 소비 둔화 영향으로 재고 처리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리씽크몰은 최근 국내 한 중견 의류 업체와 재고 매입 계약을 맺어 2만여벌, 약 1만5000kg의 옷을 kg당 2000원에 가져오기로 했다.
엔데믹으로 코로나19 특수가 끝나자 렌털 가전 재고도 늘었다. 창고에선 직원 4~5명이 학교나 기업에서 사용했던 노트북·태블릿PC를 수리하거나 초기화 과정을 거쳐 상품으로 재정비하는 리퍼비시(Refurbished)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보급됐다가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실제 사용 시간이 적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난 렌털 공기청정기도 1만대 넘게 재고로 나와 새 필터로 교체한 뒤 온라인몰을 통해 최대 89%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리씽크몰같이 재고 처리 전문 업체는 상품 판매 과정의 가장 끝 단계다. 1차 시장(대형마트·자사몰·백화점·대리점)에 우선 진열됐다가 2차 시장(홈쇼핑·아웃렛·오픈마켓)에서도 팔리지 않은 상품이 대폭 할인된 가격에 재고 처리 업체로 유입된다.
최근에는 외국의 백화점·면세점·아웃렛에서 팔리지 않은 선글라스·핸드백 같은 재고 제품이 유입되고 있다. 재고 처리 업체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편의점 상품도 과자·라면·맥주 가리지 않고 들어오고, 최근에는 홈쇼핑 매출이 저조하면서 미판매분이나 반품 재고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사가 줄고 재택근무·교육도 감소하면서 가구 재고 처리 문의도 증가하고 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재고가 쌓이는 것이다.
◇불황에 잘 팔리던 B급 재고도 안 팔려
최근 재고 처리를 문의하는 기업이 늘고 재고 상품도 다양해졌지만, 재고 처리 업체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경기 불황 초기에는 재고 상품 시장을 찾는 ‘알뜰족’이 늘어 관련 업체들 매출도 덩달아 좋아지지만, 최근처럼 경기 불황이 깊고 길어지면 소비자들은 재고 상품에 대해서도 아예 지갑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재고 처리 업체조차 처리하지 못한 재고가 쌓이는 것이다. 리씽크몰도 작년 4분기 매출이 약 11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줄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8% 하락,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의류 등 준내구재 판매가 전월 대비 5.9% 감소한 것을 비롯해 가전제품을 포함한 내구재(-1.4%), 화장품 등 비내구재(-0.5%) 등 3대 유형의 소매판매가 모두 줄었다. 리씽크몰 관계자는 “2021년만 해도 S급, A급이 아닌 B급 재고 상품도 잘 팔렸지만, 지금은 우리 마진을 더 낮추고 할인 폭을 키워서 판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