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 내에 임시로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포화 시점이 애초 2031년에서 1~2년 앞당겨진다. 원전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어지면 무조건 원전을 세워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폐기·보관할 시설을 만들기 이전에 원전 부지 내 보관하는 시설인 건식 저장 시설을 만드는 데 최소 7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에서 4~5년 동안 연소하고 꺼낸 연료봉을 말한다. 원전 건물 내에 있는 수조에서 5~6년 식히면 건식 저장 시설로 옮길 수 있지만, 아직 관련 제도와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지금껏 원전 내부 수조에 보관하고 있다.
◇ 사용후핵연료 둘 곳 없어, 이대로면 7년뒤 원전 스톱… 한빛원전부터 차례로 포화 시점 앞당겨져
18일 정부와 원전 업계에 따르면 애초 2031년이던 전남 영광 한빛원전의 사용후핵연료 보관 수조의 용량 포화 시점이 2029~2030년으로 1~2년 당겨진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방폐물학회)에 의뢰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발생량 등 재산정에 관한 연구 용역’에 따른 결과다. 산업부와 방폐물학회는 다음 달 최종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탈원전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2월, 산업부는 한빛과 고리는 2031년, 한울은 2032년 차례로 원전 내 수조가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탈원전을 폐기한 윤석열 정부가 연한이 다 돼 가는 원전 10기를 연장해 가동하기로 하고, 원전 가동률을 높이면서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 한빛원전 1·2호기는 2025~2026년 차례로 가동을 멈출 계획이었는데 계속운전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포화 시점이 다소 당겨졌고, 2032년으로 예상됐던 경북 울진 한울원전도 1·2호기가 최초 설계수명이 끝나는 2027~2028년 이후에도 가동을 계속하기로 하면서 1~2년 앞당겨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원전 수조의 저장 용량 포화율은 고리가 87.5%, 한빛이 77.9%, 한울은 74.7%에 달한다. 수조가 꽉 차 더는 원전을 가동하지 못할 위기가 실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국내 원전 중 유일하게 건식 저장 시설이 있는 월성원전은 추가 건식 저장 시설 7기가 2020년 증설 승인을 받으면서 가동 중단 사태를 가까스로 피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만약 건식 저장 시설 건설 승인이 계속 미뤄졌다면 총 2.1GW(기가와트) 규모인 월성 2·3·4호기가 작년 3월 이후 멈출 뻔했다”고 말했다.
◇ 현재는 수조서 식히며 임시 저장, 건식저장시설 빨리 지어야… 위기 눈앞이지만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
문제는 위기가 눈앞인데도 건식 저장 시설 건설을 위한 특별법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식 저장 시설 설치를 위한 설계-인허가-시설 건설과 용기 제작 등에는 7년 이상 걸린다. 한빛원전은 당장 올해부터 건식 저장 시설을 위한 설계를 시작하고 인허가를 받아도 빠듯한 일정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민주당에서 특별법을 발의했고 현 정부에서도 국민의힘이 두 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액화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원전을 최대한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건식 저장 시설 건설은 필수”라고 말했다.
특별법과 함께 건식 저장 시설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호 전 한수원 기술본부장은 “건식 저장 시설이 있는 월성원전 부지의 방사선 수치는 주변 지역 자연방사선 수치와 같고, 같은 시간대 서울보다도 낮다”며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해당 지역,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오는 26일 국회 공청회를 시작으로 관련 법 통과에 속도를 내면서 사용후핵연료 포화 문제를 해결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