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8시 30분쯤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홈페이지가 먹통이 됐다. 이날 오전 9시부터는 출생연도가 홀수 해인 저신용 소상공인 대상으로 저리(低利) 대출 신청을 받았는데, 소진공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거나 대출 정보를 얻으려는 소상공인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 “서류 제출 단계에서 10분째 로딩 중” 등의 글이 폭주했다. 소진공 관계자는 “네트워크 오류가 발생했고 정확한 원인은 확인중”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신청을 받기 시작한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진공의 저금리 대출 지원은 민간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저신용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사업 경력 90일 이상 자영업자 중 개인신용 평점이 1000점 만점 중 744점 이하(나이스평가정보 기준)인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연 2% 고정금리로 최대 3000만원까지 5년간 지원한다. 소진공은 이달 말까지 1차로 4000억원 대출 신청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신청자가 몰리며 짝수 연도 출생자가 신청한 16일은 오후 4시 20분쯤, 홀수 연도 출생자가 신청을 한 17일엔 오후 2시 10분쯤 신청 접수를 조기 마감했다. 소진공 관계자는 “18일엔 300억원을 추가로 풀었는데 20분 만에 마감됐다”고 했다.
정부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저금리 정책금융 대출에 소상공인들이 몰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각종 대출로 겨우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이번엔 고(高)금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팬데믹보다 더 무서운 게 고금리”라는 말이 나온다.
◇고금리인데, 정부 지원금은 도리어 줄어
소상공인들 사이 저금리 지원이 인기를 끄는 것은 급격하게 늘어난 대출 이자 부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또 올리면서 작년 8월 이후 약 1년 5개월 동안 기준금리가 연 0.5%에서 3.5%로 3%포인트나 뛰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자영업자들은 금리 부담이 더 큰데 정부는 2%대의 싼 이자에 돈을 빌려주다 보니 “일단 빌리고 보자”는 소상공인이 많다. 서울 송파구에서 6년째 찌개집을 운영하는 이모(58)씨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고금리 대출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 지원금으로 대출 일부를 갚으려고 한다”며 “올해엔 가게 사정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받아 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정부의 저금리 자금 지원은 줄었다. 엔데믹(풍토병화)에도 영업 회복은 더딘 상황에서 정부 지원까지 줄자 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소진공 정책자금 융자는 2020년 4조5000억, 2021년 3조8000억, 작년 3조5000억원이었는데, 올해 3조로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지급하던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코로나 재난지원금, 방역지원금도 작년으로 종료됐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 수시로 나왔던 지원금이 줄다보니 저금리 대출에 사람이 더 몰린다”고 말했다.
◇‘저신용’ 만들려 현금서비스 받고, “나도 대출해달라” 항의전화
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대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신용등급을 낮추고, 이런 방법을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 아이스크림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신용점수를 낮추려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까지 받았지만, 더 떨어지지 않고 746점으로 유지됐다”며 “나이스에 건강보험 납부 실적, 통신요금 납부 실적 같은 비금융정보 항목을 삭제하면 신용도가 낮아진다기에 전화를 걸어 삭제를 요청한 뒤 신용등급 741점을 만들었다”고 했다.
정부가 대출 자격 요건을 강화한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이번 정부 지원에서는 1인당 지원 금액을 최대 3000만원으로 올리는 대신 업력 7년 이상이거나 세금 체납·연체를 한 자영업자, 휴·폐업 자영업자는 제한됐다. 이에 일부 자영업자는 이영 중기부 장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소진공 지역 센터의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항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신용점수와 상관없이 지원을 늘려달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