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가 정신의 상징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현대기아차 그룹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청사진은 2021년 약 3만50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4만달러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해 첫날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은 미룰 수 없으며, 먼저 노동 개혁으로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노동 개혁 의지를 강하게 보인 만큼, 재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강성 노조 혁파에 상당한 성과가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노동 개혁만으로 국가 경제가 틀을 바꾸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도전 정신을 가진 기업가들이 뛰어야만 한다. 마틴 펠드스타인 전 전미경제연구소(NBER) 소장은 “국가 경제의 도약은 결국 야성(野性)을 가진 기업가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어떤 기업가 정신이 국가를 비약시킬까?

마틴 펠드스타인 전 전미경제연구소장은 국가 경제가 도약하려면 야성을 가진 기업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블룸버그

미국 경제사학자들은 기업가 정신의 모델로, 남북전쟁(1861~1865) 이후 약 40년간 맹활약하며 현대 미국 경제의 기반을 만든 존 D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제이 굴드, 존 P 모건 등을 꼽는다. 이들은 ‘악덕 자본가’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기계화, 규격화, 가격 인하, 경영 합리화, 세계화 전략을 밀고 나갔다. 그 덕에 미국이 대량 소비 사회와 중산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대영 제국에서 세계 패권을 수월하게 넘겨받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①우군을 모아 세계로 나가다

록펠러(1839~1937)는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인들을 이끌고 나갔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비용 절감과 가격 파괴였다.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소규모 정유 공장들은 연중 생산량이 들쭉날쭉한데다 단합이 안되어 운송료 협상에서 철도 회사에 열세였다. 록펠러는 경쟁자들에게 자기 회사의 고수익 회계 장부를 보여주며 합병을 권유했다. 많은 경쟁자가 그의 편에 섰다. 따르지 않으면 초저가 공세로 상대를 파산시켰다.

록펠러는 조용히,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정유 공장들을 규합한 뒤 철도 회사와 협상에 나섰다. 석유를 사들여 저장소에 쌓은 뒤 매일 일정한 양을 공급하는 방식을 썼다. 철도 회사도 빈 차 운행을 줄일 수 있어서 운임 인하 여지가 생겼다.

미국의 기업가 존 D. 록펠러는 미국 기업인들 가운데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미국 국내 시장을 넘어 전 세계에 미국 석유제품을 파는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했다./위키피디아

록펠러는 정유뿐 아니라 석유 채굴과 소비자 배송 등 전후방 사업도 함께 운영해 생산비를 낮췄다. 그러자 양초를 저렴하고 안전한 석유 램프로 바꾸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났다. 록펠러는 미국 내 오지까지 직영망을 구축한 데 이어, 유럽과 아시아에도 진출해 미국 기업 최초로 글로벌 유통망을 만들었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축산업자들이 뒤따라 중국과 일본에 판매점을 냈다.

②기계화, 대형화, 비용 절감

카네기(1835~1919)가 30대에 철강 업계에 뛰어들었을 때, 업체들은 담합을 통해 안정적 이윤을 나눠 먹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었다. 카네기는 이런 통념을 깨버렸다. 담합에 참여했다가도 이익이 된다 싶으면 언제든 깨버리면서 시장점유율을 넓혔다. 그의 기술 혁신이 이러한 공격 경영을 뒷받침했다.

앤드루 카네기는 당시 시장을 장악했던 영국의 철강회사보다 더 크고 자동화된 공장을 지어 미국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로 끌어 올렸다./미국의회도서관

카네기는 세계 철강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의 기술을 배운 뒤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 가장 큰 공장, 가장 자동화된 공장, 가장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공장의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첨단화와 대형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시장 점유율을 넓히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이익이 나도 배당을 적게 하면서 새로운 시설에 투자, 회사 몸집을 계속 키워나갔다.

③서부 개척의 수송 대동맥 건설

제이 굴드(1836~1892)는 사업 초기에 월스트리트에서 여러가지 권모술수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당시 핵심 인프라였던 철도 사업에 본격 뛰어들어 미국 철도망의 15%를 장악하는 ‘철도왕’이 됐다.

제이 굴드는 미국 서부의 철도망을 연결해 서부 개발 시대에 운송 대동맥을 건설했다./미국의회도서관

남북전쟁 전에 미국 철도 사업자들은 이익이 되는 구간에서만 철도를 건설했다. 그리고 신사협정을 통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굴드는 카네기처럼 이러한 담합을 공격 대상으로 간주하고 창조적으로 파괴했다. 그는 공매도 등 절묘한 금융 기법을 동원해 미국 서부 철도 회사들을 빠른 속도로 인수 합병했다. 수억 달러를 투입해 빈 구간을 새로 건설해 연결하며 미국 철도를 근대화시켰다. 이후 경쟁자들과 운임 인하 전쟁을 벌였다. 굴드는 서부 개척 시대 수송 대동맥을 만들어 대량 소비 사회와 중산층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④정부가 주저하자 정부 역할 맡다

모건(1837~1913)은 영국 등 유럽 투자자들의 미국 투자를 중개하며 신뢰와 명성을 쌓았다. 그러던 중 1895년 외환 위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직접 은행들을 이끌고 외환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안정시켰다. 이후 주식시장의 투기와 혼돈을 막고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명 회계 기준을 만들고 기업 가치 평가 방식도 개선했다.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위원회가 생기기 이전에 금융인이 정부 역할을 떠맡아 금융 위기를 막은 셈이다. 모건은 또 철강 업체들을 합병해 ‘US 스틸’을 만드는 등 미국 거대 기업의 합병을 주도하면서 오늘날 미국 재계의 판도를 구축했다.

금융인 존 P. 모건은 미국 정부가 주저할 때 정부를 대신해 중앙은행 역할을 하며 미국 금융시장과 경제를 안정시켰다./위키피디아

미국 기업 분석가인 찰스 모리스는 “미국의 수퍼파워 경제를 만든 기업가들은 진보, 실험 정신, 속도, 기계화, 가격 인하의 가치를 신봉했다”며 “새로운 삶을 열망하는 미국인들을 이끌어 나갔다”고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진국 경제 시스템을 갖춘 강대국이 되려면 ‘제2 정주영·이병철’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은 기업가 도전 정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삼성전자

“기업가 정신의 중요한 덕목은 국가경제 비전과 기여”

박정웅 전 전경련 상무 인터뷰

박정웅 전 전경련 상무

박정웅(79) 메이그린스톤국제컨설팅 대표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전경련 부회장과 회장으로 일하던 1974~1987년에 임원으로 보좌했다. 많은 기업인을 만나온 그는 한국 기업가 정신의 표본으로 정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를 꼽았다.

박 대표는 기업가 정신의 요소로 ①창의력 ②도전 정신 ③국가에 대한 사명감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먼저 창의력의 사례로,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 당시 중동 진출,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동차 독자 개발, 조선 사업, 88 서울올림픽 유치 등 정 회장의 업적을 꼽았다. 박 대표는 “당시에 상식적으로 가능했던 일이 하나도 없었다”며 “부정적인 생각에 좌우되면 있는 길도 안 보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없던 길도 보이기 때문에, 기업가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대표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꼽힌다.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 대전 인터체인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시험주행을 하는 모습.

박 대표는 도전 정신의 사례로, 현대중공업 초창기에 그리스와 중동의 선주들이 계약 막판에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조선업 진출이 물거품이 될 뻔했던 일화를 들었다. 그는 “정 회장은 아랫사람과 상의 없이 결단을 내려 계약서 사인을 해주곤 했다”며 “경영자는 타당성이 있고 해야 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중간 관리자들의 결정을 생략하고 자기가 직접 결정해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사업 진출도 도전 정신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기업가가 자신의 사업보다도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가는 국가를 위해 중동건설에 나서고 반도체 사업을 벌여 달러를 벌어들일 뿐 아니라,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가 행사 유치에도 직접 나서야 한다. 또 축적된 재산을 의료나 교육 등 사회 각 부문에 과감하게 환원할 줄 알아야 한다. 박 대표는 “이병철·정주영 등 현대 한국 경제의 토대를 만든 기업인들은 사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장기 비전이 뚜렷했다”고 회상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반도체 사업에 도전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주력사업을 만들었다. 지난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현재 한국 재계를 주도하는 3~4세 경영자들은 잘 하고 있을까? 박 대표는 “소비재와 중공업에 주력했던 창업자 세대와 달리, 2-3-4세 경영자들은 컴퓨터와 5G(세대) 통신,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첨단 산업의 글로벌 경쟁에서 선전하고 있다”며 “다만 신기술은 기업가의 창의력과 혁신 정신을 구현하는 도구일 뿐이므로,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국가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