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부터 작년 3월까지 총 8번 가스 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됐습니다.”
30일 대구 동구 한국가스공사 본사 접견실에서 만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국민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난방비 폭탄을 맞게 된 상황에 대해 천연가스 수급을 책임지는 가스공사 사장으로서 죄송하다”면서도 지난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 요금은 2020년 7월 인하된 이후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와중에도 1년 9개월 동안 동결됐다가 대선 직후인 작년 4월에야 인상됐다.
◇3월 말이면 미수금 12조원 이를 듯
최 사장은 미리 준비한 그래프를 꺼내 보이며 “2020년 7월 요금 인하 이후 주택용 요금이 가로로 일직선을 그리는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던 LNG 수입 원가는 2021년 9월부터 주택용 요금을 뚫고 가파르게 상승했다”면서 “이제는 판매 가격이 수입 원가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스공사 미수금은 3월 말이면 1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수금은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인데 사실상 손실이다. 미수금을 손실로 인식하면 가스공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최 사장은 “(작년 12월) 취임해서 보니 가스공사는 겉으로는 흑자이지만, 안에는 미수금이라는 언젠가 터질 폭탄을 계속 안고 있었다”며 “골병이 들어가는데도 실상을 알리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이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게 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LNG 수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12조원에 이르는 미수금을 1년 안에 해결하려면 4월부터 MJ(메가줄)당 19.69원(서울 소매 요금)인 현재 요금에서 20원을 더 올려야 한다. 최 사장은 “이 같은 인상안은 국민께 너무 큰 부담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언제까지 미수금을 해결할지는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결국 난방비 폭탄으로 이어져
최 사장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난방비 폭탄의 이유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원전과 석탄을 동시에 감축하면서 연료비가 비싼 LNG 발전이 증가했고, LNG 수요가 기존 계획을 크게 웃돌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가스공사가 계획했던 LNG 수입량은 3640만t이었는데 실제 960만t을 더 수입했다”며 “부족한 물량을 비싼 현물 시장에서 사오다 보니 수입 원가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전임 사장 시절 ‘한국수소공사’로 사명 변경까지 고려하면서 수소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친 것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사장은 “가스공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LNG 도입인데 수소 사업을 강조하면서 전문 인력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며 “LNG 도입본부에서 허리인 차장급은 정원의 40%밖에 안 돼 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수소는 분명히 미래 에너지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불확실성이 너무 큰데 회사가 수소와 관련해 너무 많은 분야에 발을 들여놨더라”며 “앞으로는 수소 탱크와 같이 가스공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실적을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수소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철도 전문가 출신으로 에너지 분야 비전문가라는 지적에는 “지금 가스공사의 문제는 가스를 잘못 다뤄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경영 판단의 문제”라며 “가스 전문가여야 가스공사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약사만 제약회사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12월 취임한 뒤 당장 급한 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고, 직원들 사기 진작과 조직 개편에 시간을 보냈다”며 “1월 가스 사용량이 12월보다 36%가량 늘어난 상황에서 다음 달 서민들의 요금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