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재의 덕목은 책임 의식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일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이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인재상을 분석해 발표한 결과다.
책임 의식을 꼽은 기업이 67사였고, 이어 도전 정신(66사), 소통·협력(64사) 순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 5년마다 실시하는 이 조사에서 책임 의식이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조사 때인 2008년엔 창의성, 2013년엔 도전 정신, 2018년에는 소통·협력이 각각 기업들이 생각하는 최고 인재의 덕목이었다.
책임 의식이 기업이 바라는 인재의 최고 덕목으로 떠오른 것은 자기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출현에 따른 변화로 풀이된다. 대한상의는 “기업들이 인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Z세대 요구에 맞게 수평적 조직, 공정한 보상, 불합리한 관행 제거 노력을 하면서 Z세대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조직과 업무에 대한 책임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1990년대생이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함에 따라 각 대기업 인사팀에서는 신입 사원들이 본인들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키는 자세를 갖췄는지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취업한파를 이기려면 변화한 기업의 인재상을 꼼꼼히 파악하고 이에 맞춰 본인의 강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선 ‘3요 주의보’라는 말이 유행이다. ‘3요’는 상사의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직원들의 반응을 일컫는 신조어다.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르던 기성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세대 출현에 당황하는 기업들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각 대기업 인사팀도 대응 방안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부 대기업 인사팀은 최근 임원 대상 교육에서 ‘3요 의미와 모범 답안’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국내 5대 그룹의 인사팀장은 “예전엔 신입 사원에게 조직에 대해 바라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해야 말을 했는데, 최근 신입 직원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며 “반면 맡은 책임에 대해서는 그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어 신입 채용에서 그런 부분을 가장 신경 쓴다”고 말했다.
일례로 SK그룹에서는 성과급에 불만을 품은 4년 차 SK하이닉스 직원이 최고경영자(CEO)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회사 전 임직원에게 보냈고, 한 삼성전자 직원도 본인이 겪은 자사 가전제품 배송 지연에 대한 불만을 한종희 부회장에게 이메일에 담아 화제가 됐다.
책임 의식의 부상과 대조적으로 2018년 2위였던 전문성은 올해 조사에선 6위로 내려갔다. 직무 중심 채용과 수시 채용 확산으로 대졸 취업자들의 직무 관련 경험과 지식이 상향 평준화된 영향으로 보인다.
한편 업종별로 원하는 인재상도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디지털 전환, 경기 둔화 등 외부적 불확실성이 증대함에 따라 ‘도전 정신’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금융·보험업에서는 직원의 횡령·배임 등 금융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도덕성을 강조하는 ‘원칙·신뢰’를 직원이 갖추어야 할 최우선 역량으로 꼽았다. 고객 만족을 추구하는 도·소매업, 서비스업 그리고 무역 운수업은 역시 책임 의식을 중시했고, 건설업은 현장 안전 차원에서 다양한 관계자와 소통하는 일이 중요해짐에 따라 ‘소통·협력’을 최우선 역량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