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네이버는 임직원 239명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약 12만5000주를 포기했다고 공시했다. 사유는 ‘퇴사’였다. 이 중 235명이 보유한 8만1000주는 오는 2월 23일부터 스톡옵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카카오뱅크도 지난달 임직원 39명이 스톡옵션 약 2만3000주 권리를 포기하고 퇴사했다고 공시했다.
이들이 스톡옵션을 포기한 것은 2년 전 증시 활황기에 받은 스톡옵션이 최근 주가 하락으로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 영향이 크다. 스톡옵션 행사 가격은 네이버가 36만~38만원, 카카오뱅크가 4만6693원이지만, 두 회사의 지난 3일 종가는 네이버가 22만3500원, 카카오뱅크 2만8850원이다. 주가가 지금보다 2배가량 올라야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수준으로 스톡옵션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IT·스타트업 임직원에게 ‘인생 역전’ ‘잭팟’ 기회로 여겨졌던 스톡옵션이 경기 침체와 증시 불황으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스톡옵션은 대개 최소 근속 기간(2년 이상)을 채워야 행사할 수 있지만 2~3년전 판교발(發) 개발자 채용 전쟁과 맞물려 대거 부여됐던 스톡옵션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 채용 보상·성과급 대신 뿌렸던 스톡옵션
IT업계에 스톡옵션 붐이 인 것은 지난 2021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IT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거두면서, 보상 확대를 요구하는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전례 없이 커진 것이다. 네이버는 그해 2월 임직원 3253명에게 스톡옵션 약 111만주를 부여했다. 행사 가격과 주식 수를 단순 계산하면 약 4038억원으로 1인당 평균 1억원 규모였다. 카카오도 같은 해 5월 창사 이래 최초로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스톡옵션 약 47만주(539억원 규모)를 부여했다. CEO나 고위급 임원만 누리는 혜택처럼 여겨졌던 스톡옵션이 신입 직원들에게도 돌아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비상장 벤처기업의 스톡옵션 부여도 2021년 기준 543곳, 9189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주가가 고공 행진한 2021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스톡옵션 행사는 곧 대박을 의미했다. 기업 데이터 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시가총액 500대 기업 중 스톡옵션 행사 여부가 파악된 기업을 조사한 결과 2020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이 기업들의 임직원들이 챙긴 스톡옵션 행사 차익이 9794억원으로 약 1조원에 달했다.
◇경기 침체에 “스톡옵션은 족쇄, 대신 연봉 더” 회사·직원 눈치 싸움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IT기업들에서도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퇴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검색 포털 줌인터넷의 경우 32명이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퇴사했다고 작년 11월 공시했고, 바이오 기업 웰바이오텍도 지난해 12월 8명이 같은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두 회사 모두 스톡옵션 행사 가격 대비 당시 주가가 크게 떨어진 탓이었다.
채용 시장에서도 스톡옵션은 더 이상 인재들을 끄는 유인이 되지 못한다. 최근 개발자 채용 면접을 했다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한 지원자는 스톡옵션 대신 연봉을 높여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더라”며 “스타트업계의 공식인 ‘연봉 70%+스톡옵션 30%’ 같은 조건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업계에선 최근 주기가 짧아진 이직도 스톡옵션 가치 하락 요인으로 분석한다. 스톡옵션 행사 최소 조건(근속 2년)을 채우기보다 몸값을 높여 자유롭게 이직하는 게 차라리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 초 정유·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최대 1000%대 성과급을 지급한 것도 보수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스톡옵션 가치 폭락으로 임직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아예 행사 가격을 낮춰 다시 부여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2021년 코스닥에 상장한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은 작년 10월 임직원 100여 명에게 2021~2022년 초 행사 가격 약 3만3000원에 부여했던 스톡옵션 약 11만주를 취소하고 그 절반 수준인 1만5750원으로 다시 부여했다. 같은 기간 주가가 반 토막 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