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은 연초 올해 선박 건조 수주 목표치로 작년 실적(86억6200만달러)에서 70%나 감소한 26억달러(약 3조2500억원)를 발표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최대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1월에만 25억6000만달러 수주를 따내 이미 연초 목표치의 98.5%를 달성했다.

국내 주요 조선사들이 올해 ‘발주 가뭄’ 예상을 깨고 연초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HD현대 조선 부문)과 삼성중공업은 한 달 만에 7조원 규모 계약을 수주해 올해 수주 목표의 21~24%를 채웠다. 대우조선해양도 카타르에너지의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추가 발주 협상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국내 주요 조선사는 1월에만 연간 목표치의 약 25%를 수주하며 순항하고 있다. 노후 선박 교체와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면서 수주가 이어진 덕분이다. 사진은 야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모습. /현대중공업

◇예상 뒤집은 수주 호조

업계에선 올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최근 몇 년간의 호황이 유지되기 어렵고 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올해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작년보다 49% 감소한 2200만CGT(표준선 환산톤수)에 그치고, 한국 조선 업계 수주량도 지난해보다 48% 감소한 850만CGT, 수주액은 52% 줄어든 220억달러(약 27조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연초 실적은 예상을 벗어나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31일 유럽 소재 선사와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2조5264억원에 계약했다. 글로벌 탄소 규제로 노후선 교체 발주 주문이 밀려들면서 대규모 계약이 성사됐다. 삼성중공업도 고가 선박 위주 수주와 강점을 보이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계약으로 20억달러 수주 실적을 올렸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선박 수주가 급감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LNG 운반선은 70척 이상 발주가 기대되고 LNG·메탄올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연료 추진 선박도 꾸준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LNG 선박 가격도 고공 행진

국내 조선사가 강점을 보이는 LNG 운반선 가격의 고공 행진도 한국 업체로서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실제로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인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달 중순 17만4000CBM(㎥)급 LNG 운반선의 가격은 2억4800만달러(약 3092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년 전 대비 33% 올랐다. 게다가 국제해사기구(IMO)가 2030년 이후 발주 선박은 온실가스를 2008년 대비 40% 감축하도록 결정하면서 친환경 선박 수요는 향후에도 꾸준할 전망인 데다 한국은 친환경 선박 건조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선령(船齡)이 20년이 지난 노후 선박에 대한 교체 수요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1973년 오일쇼크로 발주됐던 선박들을 대체하기 위해 2003~2004년 발주가 집중됐고, 이때 발주된 선박이 다시 노후화돼 교체 시기가 다가왔다.

국내 조선 3사는 카타르에너지의 LNG 운반선 2차 수주도 앞두고 있다. 3사는 지난 2020년 6월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 QP(카타르 페트롤리엄)와 2027년까지 100척 이상(약 23조원)의 LNG 운반선 건조를 위한 슬롯 예약 약정서(DOA)를 맺었고, 작년 본격적으로 물량이 발주돼 총 54척을 수주했다. 3사는 지난달 중순부터 카타르에너지와 2차 발주를 위한 협상도 진행 중이다. 2차 주문량은 40척 안팎으로 작년보다 소폭 감소할 가능성이 크지만 탄소배출 저감 등 친환경 기술이 대거 적용될 가능성이 커 수익성은 더 좋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