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와중에도 사상 최대급 실적을 올린 정유·가스·배터리 분야 기업들은 올해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했다. 일부 기업들은 기본급의 1000% 이상을 지급했고, 하반기부터 업황이 꺾인 반도체 기업들도 연봉 절반에 가까운 성과급을 지급했다.

반면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이나 사내 다른 사업부문에 비해 성과급이 적은 사업부에서는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신의 성과급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MZ세대들의 영향으로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은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성과급으로 기본급 1500%” “연봉 160%”

가장 두둑한 성과급을 받은 업종은 정유·가스업계다. LS그룹 계열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유통업체 E1은 기본급 대비 15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E1은 지난해 LPG 수요 증가에 힘입어 3분까지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0% 이상 늘었고, 1948억원의 흑자를 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GS칼텍스 역시 최근 임직원들에게 기본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현대오일뱅크 임직원들도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전기차 시대 대표적인 수혜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은 LG이노텍(기본급의 517∼705%), LG화학(기본급의 352∼735%) 등 계열사를 제치고 LG그룹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성과급을 받았다. 기본급의 평균 870%, 최대 900%를 받았다. 기본급 450% 수준을 받았던 전년도와 비교하면 2배 수준이다. 같은 배터리 업종의 삼성SDI도 연봉의 30% 수준을 성과급으로 받았고, SK온도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지만 경쟁업체와 큰 차이 없는 성과급을 받을 전망이다.

극심한 수요 한파에 직면한 반도체 업계는 ‘마지막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은 연봉의 50%를 받았다. 지난해 4분기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낸 SK하이닉스도 기본급의 82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지난 4분기 1조7000억원대 적자를 낸 SK하이닉스는 예상보다 높은 성과급 규모에 대해 “구성원이 협업해 유례없는 위기를 극복하자는 격려의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상품기획(MD) 부문 직원들에게 연봉의 80~16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 CJ올리브영이 가장 화제다. 온라인 직장인 사이트에는 CJ올리브영 성과급과 관련해 “동기가 8000만원을 받았다” “7년 차면 1억5000만원 예상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비슷한 조건으로 입사했는데 천당과 지옥” 갈수록 커지는 성과급 갈등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월급은 적어도 괜찮지만 성과급만큼 제대로 달라’는 MZ세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경영 성과나 성과급 규모에 관계없이 유례없이 많은 기업들이 성과급을 둘러싼 내홍을 겪고 있다.

MD직군이 눈에 띄는 성과급을 받은 올리브영의 경우 “다른 직군은 연봉의 20~40%만 받았는데 MD 직군만 우대한다”는 식의 불만이 나온다. 연봉의 7%를 성과급으로 받은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선 숫자 ‘7′이 금기어가 됐다. 연봉의 50%를 받은 반도체사업부와 비교하면 입사 동기라도 최대 7배 격차가 나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은 기업들도 성과급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노조는 최근 “역대 최대 성과에 대해 투명한 기준을 적용해 적절한 배분으로 대한항공 미래 주역인 임직원 모두에게 차등 없이 돌아가야 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초 임단협에서 기본급의 최대 300%로 성과급 규모를 합의했지만 노조는 3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낸 만큼 성과급을 더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한 LG유플러스도 성과급 논란을 겪고 있다. 회사 측이 목표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과급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자, 직원들이 “기준을 납득하기 힘들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 10대 기업의 인사팀장은 “최근 젊은 직원들은 중심으로 성과급 지급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성과급이 노사 갈등뿐 아니라 노노 갈등의 원인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