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일 사토 고지(53) 렉서스 사장이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의 새로운 CEO에 취임한다. 창업가(家)와 전문 경영인이 번갈아 CEO를 맡는 도요타에서 50대 전문 경영인 CEO는 그가 처음이다.
사토 고지의 등장으로 완성차 업계에선 동년배인 정의선(52)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경쟁 구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일 대표 완성차 기업의 자존심 대결 외에도 카 마니아로 불리며 기술에 공을 들여온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등 패러다임 전환이 한창인 업계 특성상 두 사람의 행보에 따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지형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문화 공부하는 기술통
2009년 대규모 미국 리콜 사태 때 투입됐던 현 CEO 아키오 도요다가 건재한데도 수장을 전격 교체한 것은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지위를 위협받는 도요타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에서 210만8458대를 팔아 2021년보다 판매량이 9.6% 줄었다. 문제는 도요타(-8.8%) 판매보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15%) 판매가 더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도요타 판매는 늘었지만, 렉서스는 19%나 줄었다. 렉서스의 자리를 차지한 건 전기차다.
사토 고지는 와세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렉서스의 수석 엔지니어 등을 거쳤다. 전기차 전환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기술통 전문 경영인을 수장에 앉혀 변화의 메시지를 외부로 표출한 셈이다. 이달 초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 출시 등 전기차 전략 변화를 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전기차 전환에 부정적인 아키오 도요다는 사토 고지에게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팀으로 경영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전기차에 여전히 신중한 도요타 경영진과 동행을 의미한다는 평가다. 도요타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길 프랫 수석과학자도 지난 3일 “적은 양의 리튬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만드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사토 고지는 개인 역량에 대한 의문 부호도 떨쳐내야 한다. 일본에선 벌써부터 그를 임시 CEO로 보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의 뒤에는 아키오 도요다의 아들이자 도요타 자율주행 부문 수석 부사장인 30대 다이스케 도요다가 있다.
주니치 신문에 따르면 사토 고지는 최근 시야를 넓히라는 주위 조언에 따라 교토의 한 대학원에서 일본 문화를 공부하고 회화 등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늘렸다고 한다. 카 마니아로 굳어진 이미지를 경영가로 쇄신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한 일본 재계 전문가는 “취임 2~3년 내 그에 대한 평가는 끝날 것”이라며 “그가 판매량 등 단기 목표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의선 “현대차 라이벌은 IT 회사”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판매 3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은 더 강력한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현대차를 ‘IT 업체보다 더 IT 업체 같은 업체’로 바꾸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달 신년사에서 “자동차회사가 전자회사보다 더 치밀하고 꼼꼼해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의 최근 선전은 다른 완성차 업체보다 발 빠른 전기차 전환 덕에 가능했다. 다른 업체들이 전동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현시점에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게 현대차의 목표다. 정 회장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도 수차례 “데이터를 확실히 장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독자 OS(운영체계)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차량 제어,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플랫폼,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뜻이다. 네이버 출신 송창현 사장이 이끄는 TaaS(서비스형 운송) 본부 아래로 소프트웨어 조직을 통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변화과정에서 내부진통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TaaS 본부와 선행기술원으로 대변되는 소프트웨어 신진 세력과 남양연구원 중심의 기존 내연기관 관련 직원들이 임금·처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내연기관 연구원들의 불만은 “돈은 우리가 버는데 왜 우선순위에서 밀리느냐”는 것이다. 현대차 비전 실현의 명운이 조직 관리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