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오는 4월로 예정된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이 사실상 무산됐다. 대한항공은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개편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 데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여당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대한항공에 개편안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으로선 기존 개편안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제도 개편을 수개월간 유예하고 새로 수정안을 내놓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편 아니라 개악” 논란에 元 장관 직접 나서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 개편을 처음 발표한 것은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 12월이었다. 그간 동북아시아, 동남아, 서남아, 북미·유럽·대양주의 4그룹으로 나눠 마일리지를 공제하던 것을 실제 운항 거리별로 10구간으로 나눠 공제 기준을 세분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단거리 항공권은 마일리지 공제율이 낮아지고, 장거리 항공권은 마일리지 공제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코노미석을 비즈니스석이나 1등석으로 승급할 경우 공제율도 장거리 노선이 더 높아졌다. 단거리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고, 마일리지는 주로 장거리 항공권 발권이나 좌석 승급에 사용하는 여행객들에게는 불리한 개편이다.

당초 2021년 4월부터 이를 적용하려던 대한항공은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끊기자 개편을 2년 연기했다. 하지만 최근 해외여행이 본격 재개된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 시점이 다가오자 항공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은 고객들이 애써 쌓은 마일리지의 가치를 대폭 삭감하겠다는 것”이라며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19일에도 “코로나 때 고용 유지 지원금과 국책 금융으로 생존했는데 감사의 프로모션을 못할망정”이라며 대한항공을 거듭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항공은 16일 마일리지 개편에 따른 보완책을 국토부에 긴급 보고했다. 오는 6~10월 인기 노선인 뉴욕·LA·파리 노선에 마일리지로 예약 가능한 주 1~2회의 특별편을 100편 이상 투입하고, 현재 전체 좌석의 5% 선인 마일리지 좌석 공급도 늘리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일리지 특별편은 공짜 여행 가는 단체 손님 취급받을 것 같다” 등 부정적 반응이 컸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17일 이 보완책에 대해 “조삼모사식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대한항공은 코로나 상황에서 국민 혈세로 고용 유지 지원금을 받고 국책은행을 통한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건 잊고 소비자를 우롱하면 부끄럽지 않냐”고 쏘아붙였다.

◇마일리지 공제율 낮출 듯… 마일리지 좌석은 더 늘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운항 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공제하는 개편안의 뼈대는 유지하되, 발권이나 좌석 승급에 필요한 마일리지 공제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운항 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공제하는 것은 글로벌 항공사들도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제도여서 대한항공도 이전 제도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장거리 항공권 발권과 좌석 승급 때 공제되는 마일리지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마일리지 좌석 공급 비율을 현재 5% 선에서 더욱 높이는 방안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019년 말 개편안을 처음 공개한 뒤부터 수년 동안 개편 작업을 해온 만큼 당장 새로운 안을 내놓기는 어렵다”며 “국토교통부와 현업 부서가 대응 방안을 계속해서 협의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