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쟁시장청(CMA)이 지난 1일(현지 시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우리 공정위와 중국, 호주를 포함한 11국에선 이미 승인을 받은 대한항공은 이제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의 승인만 남은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르면 상반기 중엔 남은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모두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해외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합병에 따른 독과점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방안을 해외 경쟁 당국에 제시하면서 합병 승인이 급물살을 타는 것이다.
하지만 합병 승인을 얻는 대가로 두 항공사의 중복 노선 운수권과 슬롯(특정 시간대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 일부를 외항사로 넘기게 돼 국내 항공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영국 승인 과정에서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인천~런던 노선 운수권과 슬롯을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겠다고 제안한 끝에 승인을 얻어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 주당 각각 10개와 7개 슬롯을 보유 중인데, 이 중 7개를 넘기게 된 것이다.
한편 항공 소비자들 사이에선 “국적 항공사의 해외 노선 축소도 문제지만 ‘제2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거대 항공사 탄생에 따른 노선 독과점이 서비스 질 저하와 항공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승인받으려 외항사에 슬롯·운수권 넘겨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던 운수권과 슬롯을 외항사에 내주고 있는 것은 두 항공사 통합에 따른 해외시장 당국의 독과점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2차 심사에 돌입한 EU 지역에서도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등 4개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시장 점유율이 60%(2019년 기준)를 넘기 때문에 각 노선 운수권 일부를 유럽 항공사들에 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지역도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시애틀 등 대부분 미주 노선이 중복돼 있다.
항공업계에선 국적사 전체의 운수권과 슬롯이 잇따라 줄어들어 국내 항공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한항공이 외항사보다는 국내 저가 항공사(LCC)가 취항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같은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최근 대형기를 도입하고 장거리 노선을 새롭게 취항하며 장거리 운항 경험을 쌓고 있는데, 외항사보다는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거리 취항 의지가 있는 LCC도 있고, 당장은 취항이 어렵더라도 대형기를 리스하고 준비를 잘할 수 있었는데, 외항사에 운수권을 넘긴 것은 아쉽다”며 “국적기를 선호하는 승객들 특성상 국내에선 대한항공의 영향력만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 당시 장거리 기재가 충분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며 “만약 버진애틀랜틱이 운항 노선을 포기하거나 최소 기간 운항하지 않을 경우 국내 LCC를 포함한 세계 모든 항공사에게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마일리지 사태’ 또 발생 우려
소비자들 사이에선 일부 노선의 운수권 독과점으로 항공권이 치솟거나, 대한항공의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포~하네다’ 노선이 대표적이다. 서울과 가까운 김포공항에서 일본 도쿄 도심과 가까운 하네다 공항으로 갈 수 있어 ‘알짜 노선’으로 꼽히지만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100% 취항하고 있다. ‘인천~인도네시아’ 노선, 일부 중국 노선도 두 항공사가 독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항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노선은 지금도 비슷한 운항 거리의 경쟁사가 있는 타 노선에 비해 항공권 가격이 비싼 편”이라며 “합병 이후 대한항공만 독점 운항하는 노선에선 비행기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