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찾은 경남 김해의 조선 기자재 업체 A사 공장은 인적이 끊겨 썰렁했다. 170평(562㎡) 넓이 공장에는 작게는 100~200㎏에서 크게는 1t 가까이 되는 철제 부품과 각종 공구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선박 보일러실에 들어가는 철제 구조물을 생산하는 A사는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밀려드는 일감에 휴일에도 조업을 멈추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인력난 탓에 직원 7명 중 6명을 베트남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게 사달이 났다. 이들이 지난 설 연휴 직전 단속에 걸려 강제 출국당하면서 공장이 그대로 멈춰 선 것이다. 사장 정모(35)씨는 “한국인 직원들이 힘들다고 그만두는 바람에 400만~500만원씩 주고 불법 체류자라도 써야 했다”며 “이마저도 하루아침에 강제 출국당하면서 지금은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지난 1일 경남 김해에 있는 중소 조선사에서 파트타임으로 고용된 외국인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선박용 관 등을 만드는 이 기업은 지난달 중순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 4명이 강제 출국 당하면서 조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 2·3차 중소 협력 업체들이 불법 체류 외국인까지 고용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에 처했다./이기우 기자

◇”중소 조선사, 불법 체류 외국인 아니면 일할 사람 없어”

조선업계의 인력난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연말까지 조선업계에서 약 1만4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비전문취업 비자(E-9) 외국인 인력을 지난해 8만4000명에서 올해 11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충원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같은 대형 조선사나 사내 협력업체나 가능하지 2·3차 중소 외부 협력업체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소규모 2·3차 협력업체들은 한국인이나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지 못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불법 체류 외국인 고용에 내몰리는 실정이다. 불법 체류자 채용이 적발되면 E-9 비자 외국인 신규 고용 신청은 최대 3년간 제한돼 사실상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실제로 경남 김해에서 선박 배관 등을 만드는 B사도 지난달 중순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에 적발돼 전체 직원 13명 중 베트남 직원 4명을 내보냈다. 2명은 강제 출국당했고, 1명은 단속을 피해 10m 높이에서 뛰어내렸다가 크게 부상해 입원했다. 나머지 1명은 야산으로 도망쳐 연락이 끊겼다. 업체 대표 김모씨는 “단속이 있은 뒤 월 생산량이 70t에서 40t으로 줄었다”며 “어떻게든 납기를 맞추려고 휴일에도 조업을 계속하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외국인 3명을 일당 15만~16만원 주며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조선업체 중에선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을 피하려 공휴일이나 야간에만 조업하거나, 공장 정문에 CCTV를 설치해 단속반이 뜨면 비상벨부터 울린다는 곳도 있다”고 했다. 최금식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정부가 외국인 인력 도입을 늘린다지만 영세 협력업체엔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대형 조선소 납기도 지연

지난달 28일 찾은 경북 포항의 조선 협력업체 C사는 공장 부지 곳곳에 철강 후판이 거치돼 있었지만, 막상 작업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16개 선박 블록(block)이 들어가는 도장 공정 작업장에는 블록이 8개뿐이었다. 한국 조선의 전성기였던 2008년 600여 명에 달했던 직원은 450여 명으로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인력이 충분하다면 작업자들이 철강 후판에 달라붙어 용접·가공 작업을 하고 있겠지만, 인력이 없어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며 “작업 물량을 제때 소화하지 못해 인근 기업에 돈을 주고 부지를 빌려서 후판을 쌓아놓고 있다”고 했다.

중소 조선 협력업체의 극심한 인력난 탓에 대형 조선 3사 공정 지연도 심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일부 공정은 한 달 넘게 밀렸고,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도 일정 기간 공정이 늦어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인력난이 심각한 일부 사외 협력사들이 블록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납품이 지연된 탓이 크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선업계 협력업체들은 업무 환경이 열악해 구인난이 심각하지만, 전체 조선업 생태계에서는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외국인 인력을 도입할 때 인력난이 심각한 기업에 인원이 우선 배치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