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첨단전략산업(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특화단지를 유치하기 위한 전국 지자체들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가 인허가 간소화, R&D(연구개발) 예산 우선 배정, 인프라 구축 지원을 약속한 특화단지에 선정되면 고용 창출을 포함한 수조원대 경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월 진행한 공모에는 세 분야에 지자체 20여 곳이 지원했다. 지자체와 업계에선 “혜택이 확실한 만큼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반도체 특화단지 공모엔 경기도에서만 7곳(용인·화성·이천·평택·안성·고양·남양주시)이 신청하고 인천, 부산, 대전 등 광역시들까지 뛰어들었다.

각 지자체들이 저마다 강점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대립 구도도 형성되고 있다. 강원·영남·호남·제주·충청권의 한 연합 시민단체는 지난 6일 “기존 평가 항목은 수도권에 유리하다”며 “평가 항목에 ‘국가균형발전’을 반드시 포함하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반도체 유치전 가장 치열, 저마다 “최적지” 강조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정부 사업이다. 미국(반도체과학법·IRA법), 중국(제조2025)을 필두로 주요국들이 국가 주도 산업 개발 정책을 앞다퉈 내놓자,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안정적인 생산거점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특화단지에 선정되는 지자체와 해당 기업엔 부지와 인프라·투자·R&D·사업화와 관련된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우선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와 인프라 확보를 지원하고, 수도·전력 관련 인허가도 신속하게 내준다는 방침이다. 신성장·원천기술 보유 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해선 대기업·중견기업은 최대 8%, 중소기업은 최대 16%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산단 내 용적률도 기존 350%에서 최대 490%로 완화한다. R&D 예산 지원과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우선권을 준다.

◇2차전지도 경쟁 치열, 불경기 디스플레이는 조용

혜택이 집중된 만큼 각 지자체들은 자신들만의 강점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도체 특화단지의 경우 경기도 주요 도시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연계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등 교통망을, 대전시는 대덕연구단지를 거점으로 한 풍부한 반도체 인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부산은 전력반도체 집적단지가 있다는 점을, 경북 구미는 반도체 소재 부품 산업의 메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공동 유치전에 나선 광주·전남은 ‘국내 유일 초광역 특화단지’를 앞세운다.

2차전지 특화단지 경쟁도 치열하다. 울산시는 삼성SDI, 고려아연 같은 지역 기업과 울산대 등이 참여한 전지산업연합체를 결성해 유치전에 나섰다. 충북 오창은 이차전지 완제품 생산 업체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비엠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을, 경북 포항은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칼 같은 양극재 기업을 중심으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전북 군산은 새만금산단의 넓은 부지와 현지의 풍부한 신재생에너지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실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세일즈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특화단지는 충남 천안·아산(삼성디스플레이 연계)이 신청했고, LG디스플레이 사업장이 있는 파주시는 신청하지 않았다. 업황이 부진한 영향으로 알려졌다.

◇'비수도권 우선’ ‘클러스터 우선’ 갈등 불씨

정부는 산업부와 전문위원회의 1차 검토·조정, 국무총리 주재 첨단전략산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상반기 안에 특화단지를 지정할 계획이다. 위원회에는 국무총리, 8개 부처 장관 포함 정부위원 12명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민간위원 8명이 참여한다. 정부는 “정해진 숫자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지자체와 업계에선 반도체 2곳, 2차전지 1곳, 디스플레이 1곳을 예상하고 있다.

향후 심의 과정에선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자체 간 신경전이 뜨거울 전망이다.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개정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는 ‘수도권 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기존 조항에 ‘관련 기업이 집단적으로 입주해 있거나 입주하려는 지역도 우선순위에 포함한다’는 새 조항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어느 조항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기반으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는 수도권과 균형발전 명분이 있는 비수도권 유불리가 크게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