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북 포항 포스텍(포항공대) 캠퍼스 안 스타트업 육성 공간 ‘체인지업그라운드 포항’. 최고 7층, 연면적 2만8000㎡(약 8470평)에 이르는 건물 곳곳엔 3~12인용 사무실, 영상 제작 스튜디오와 영상회의실, 1인 집중 업무 공간 ‘워크 큐브(work cube)’ 같은 다양한 업무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VR(가상현실) 게임실, 음악 휴게실인 뮤직라운지, 낮잠용 수면캡슐, 안마의자, 세탁실, 샤워실, 공유 주방 같은 각종 휴식·편의 공간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포스코가 830억원을 들여 2021년 7월 완공한 스타트업 공간. 개관 당시 입주 기업 68곳의 기업 가치와 직원 수가 각각 4672억원, 596명이었지만 작년 12월 기준 입주 기업은 96개로, 이 기업들의 기업 가치와 직원 수는 각각 1조3088억원, 910명으로 훌쩍 늘었다. 이곳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판로 지원, 투자 연계, 네트워크 분야뿐만 아니라 시제품 제작이나 벤처펀드 운용사와 연계 같은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
인재들이 서울·수도권으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지방 스타트업 생태계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삼성이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문을 연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캠퍼스’도 그런 경우다. 2018년부터 서울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매년 20곳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삼성이 올해부터 지방에서도 우수 스타트업을 선발·육성하는 것이다. 삼성은 헬스케어·로봇·소재부품 분야에서 지역 내 혁신 스타트업 5곳을 선정해 1억원씩을 지원하고 맞춤형 컨설팅, 삼성전자 및 계열사와의 협력 기회를 제공한다.
◇대기업들이 마련한 지방 창업 인프라
서울 이남 특정 지역 밑으로 가면 사람 뽑기 힘들다는 뜻의 ‘남방한계선’이란 말이 있을 만큼, 지방에선 창업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로 스타트업들은 수도권 집중이 극심하다. 벤처캐피털 같은 투자 네트워크가 수도권에 몰린 탓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의 신규 벤처 투자액은 4조9485억원으로 전국 벤처 투자액(6조1376억원)의 80.6%에 이른다. 벤처기업협회 조사 결과 벤처기업의 64.8%(1만8617개), 특히 업력 3년 미만 스타트업은 70.7%(5318개)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나 삼성의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캠퍼스는 이런 남방한계선을 뚫겠다는 시도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전문적인 실험·양산 설비나 연구 아이디어 제공 같은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체인지업그라운드 포항의 경우 포스코가 만든 산업용 전기·집진·폐수처리·가스 같은 설비를 스타트업들에 ㎡당 1만원의 사용료만 받고 제공한다. 돼지열병 백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바이오앱’은 식물에 단백질을 이식해 양산하는 기술을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이런 지원 덕분에 서울·수도권을 떠나 본사를 체인지업 그라운드로 옮긴 기업도 12곳이나 된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는 삼성전자 네트워크가 최대 강점이다. 이곳에 입주한 로봇 스타트업 엠에프알의 이승열 대표는 “삼성전자를 통해 우리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요처를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이 전문 실험·양산 시설 제공
2014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된 중기부 산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지역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경우 현대중공업과 함께 2015년부터 매년 기술공모전을 열고 있다. 2022년까지 조선·해양, ICT 융합, 안전 분야 55개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했다. 2017년 울산에서 창업한 디지털 트윈(데이터 시각화) 스타트업 팀솔루션의 김지인 대표는 “소규모 스타트업이라 고객사를 만날 기회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현대중공업과 연결돼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디지털 트윈 기술을 검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