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오는 22일 공청회를 열고, 이르면 이달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구체적인 이행안을 담은 기본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업계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정부에서 산업계 반발에도 밀어붙인 실현 불가능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정하지 않고는 국내 산업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커녕, 국내 핵심 산업만 고사시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2021년 10월 문재인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1년 전 정부가 UN(국제연합)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률(26.3%)보다 크게 높인 40%를 ‘2030 NDC’로 확정했다. 특히 산업 부문은 애초 계획했던 6.4% 감축에서 14.5%로 높였다. 산업계는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5.8%(2018년 기준)로 에너지(37.1%) 다음으로 높다. 정부는 개발도 안 된 기술과 큰 비용이 드는 친환경 원료 전환, 폐플라스틱·철스크랩 등으로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업계에선 ‘비현실적인 목표’ ‘경제 재갈법’이라고 반발했다.
◇석유화학 업계, “설비 50% 늘어나는데 20% 줄이라니”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탓에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하는 분야는 최근 투자가 잇따르는 석유화학 업종이다. 2018년 온실가스 4690만t을 배출한 석유화학 업종은 2018년보다 20.2%(950만t)를 줄여야 하지만 목표 달성은커녕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날 상황이다. 사우디 아람코 자회사인 에쓰오일이 9조2580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샤힌(Shaheen) 프로젝트’를 비롯해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생산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에틸렌의 경우 생산 규모는 2018년 946만t에서 2026년 1450만t까지 늘어난다”며 “생산 규모는 50% 넘게 늘어나는데 온실가스를 20%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NDC 확정 당시 정부가 대체 원료로 제시한 ‘바이오 나프타(콩·옥수수를 사용한 친환경 원료)’나 재생 플라스틱은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 대안이 되지 못한다.
시멘트 업종도 LNG(액화천연가스) 대신 전기를 연료로 쓰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유연탄 대신 폐합성수지를 사용해 12%(410만t)를 줄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비용 부담이 커지면 줄줄이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NDC를 맞추기 위해선 생산량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제조 공정에 사용하는 불화가스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반도체·디스플레이도 가뜩이나 수요 부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해외 기업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늘면 살아남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애초 2.3%로 감축률이 낮게 책정된 철강 업계는 2030년까지 5%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수소를 원료로 쓰는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신기술 개발이 선행되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 달성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14.5% 줄이면 생산액 270조원, 일자리 46만명 줄어
2021년 NDC 확정 당시 산업연구원이 자체 분석한 결과로는 국내 산업계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4.5% 줄이는 과정에서 생산액은 270조원 줄고, GDP(국내총생산)는 83조5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일자리도 46만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해당 자료는 NDC 결정 당시엔 공개되지 않았다가 최근 업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알려졌다.
결국 전문가들은 산업계 목표치 14.5%를 현실에 맞게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을 주도하는 유럽도 자국 산업 이익을 우선해 친환경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를 공멸로 몰아가는 감축 계획은 반드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U(유럽연합)는 올해부터 탄소 배출이 많은 품목을 수입할 때 이 품목들이 배출한 탄소량에 따른 비용을 부담시키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시행하기로 했지만, 해외 수출 시장에서 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 문제에 대해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탈탄소에 앞장서온 독일도 최근 EU 이사회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탄소 배출량 감축에만 집중하다가는 우리 효자 산업을 모두 해외로 내쫓게 된다”며 “전체 40% 목표치도 현실성이 없지만 우선 산업부문 감축 목표치부터 현실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