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업체에 매년 수천억원대 로열티를 주며 만들던 LNG 운반선 화물창(액화천연가스 저장 탱크)을 국산화하는 ‘KC-1′(한국형 화물창) 사업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2018년 첫 한국형 화물창이 선박에 탑재됐지만 탱크 외벽에 결빙이 생기는 ‘콜드스팟’이 발생해 운항을 멈췄다. 이후 약 1000억원을 들여 4차례 수리를 했지만, 이달 7일 종료된 4차 시험 선적에서도 콜드스팟이 재차 발생한 것이다.

KC-1은 한국가스공사가 설계를 하고, 삼성중공업이 건조를, SK해운이 운용을 맡아 개발해왔다. 설계사인 한국가스공사 측은 지난 2월말 “기후가 온화한 중동 또는 호주 항로에 투입하면 콜드스팟을 피할 수 있어 운항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SK해운에 보냈지만, SK해운 측은 ‘콜드스팟으로 인한 사고 위험 탓에 운항 재개가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5년째 수리와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누적 손실도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이 장기 표류하면서 사업 참여사들은 그 책임을 놓고 소송도 벌이고 있다. 조선·해운업계에선 “원천 기술 개발 필요성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기술 상용화를 추진하려다가 세금 손실과 민간 기업 피해가 막대하다”는 평가나 나온다.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LNG운반선 화물창(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의 내부 모습(위). 2018년 SK스피카호(아래)에 처음 탑재해 운항에 나섰지만, 화물창 외벽에 결빙이 생기는 '콜드스팟' 결함이 나타나 5년째 네 차례나 수리와 테스트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국내 조선소 핵심 일감 LNG 운반선, 5%는 로열티

LNG 운반선은 국내 조선사의 핵심 일감이다. 작년 전 세계 발주량의 약 70%를 국내 조선사가 수주할 정도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 조선사들은 선가(船價)의 약 5%를 프랑스 GTT사에 기술 로열티로 꼬박꼬박 내야 한다. 선박 건조 기술은 뛰어나지만 LNG 운반선의 핵심인 저장 탱크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17만㎥ 규모 LNG를 나를 수 있는 운반선을 건조할 경우 약 100억원을 지불해왔다. 이런 식으로 조선 3사가 GTT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한해 수천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기술 종속을 벗어나고자 정부는 2004년 국책 사업으로 한국형 LNG 화물창 개발에 돌입했다. 영하 162도의 액체 상태인 탱크 내벽과 실온에 노출되는 외벽의 온도 차이를 극복하는 단열 시스템이 핵심 기술이다. 10년에 걸쳐 427억원을 투입한 끝에 2018년 KC-1을 장착한 LNG운반선 2척(SK스피카, SK세레니티)이 SK해운에 인도됐다. 그러나 두 선박은 첫 출항에서 화물창 탱크 외벽에 콜드스팟과 단열공간 기준온도가 맞지 않는 결함이 발생해 수리에 들어갔다. 콜드스팟이 반복될 경우 화물창에 갑자기 큰 균열이 생겨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첫 수리비 197억원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면서 수리에 매달렸지만 최근 4차 시험 선적에서도 똑같은 결함이 생긴 것이다.

◇5년간 4차례 수리했는데 또 문제 반복

결함의 원인을 두고 설계를 맡은 한국가스공사와 수리와 건조를 맡은 삼성중공업은 서로 상대방 책임이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가스공사는 “건조와 수리 때 유리섬유 채움 불량 같은 설치 하자가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수리를 맡아온 삼성중공업은 “화물창의 형태에 따라 재료 투입을 다르게 설계했어야 하는데 가스공사가 이런 부분을 설계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설계 결함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형 화물창에 대해서는 현재 국내외 항로 운항 안전성을 판단하기 위한 미국·한국선급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운항이 가능하다는 결정이 나와도 기온이 높은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동안 운항 중지에 따른 손실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를 두고 첨예한 법적 다툼이 장기화할 소지가 크다. 지금까지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대체선 투입과 LNG 손실에 따른 손실 1000억원, 삼성중공업은 수리 비용 1000억원, 선박 운용을 맡은 SK해운은 선박 금융 원리금 상환과 기타 비용 등으로 약 2000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