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수원 그래핀스퀘어 R&D센터에서 홍병희 대표가 그래핀 필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흑연 원자 한 층으로 구성된 그래핀은 투명하고 구리·은보다 열과 전기를 잘 전달하면서 강도는 강철의 200배나 된다. /고운호 기자

흑연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그래핀(graphene)’은 구리·은보다 열·전기는 훨씬 잘 통하면서 강도는 강철의 200배다. 2004년 연필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내는 식으로 그래핀을 처음 분리한 러시아 태생 두 물리학자는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만큼 획기적인 소재다. 산업적 응용이 무궁무진한 ‘꿈의 신소재’ 그래핀은 상용화 장벽이 높았다. 두께가 0.3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불과해 양산이 쉽지 않은 탓이다.

서울대 화학부 교수인 홍병희(52) 대표가 2012년 창업한 그래핀스퀘어는 전 세계 최초로 그래핀 양산 체제를 갖춰, 그래핀 상용화의 물꼬를 텄다. 그래핀 관련 보유 특허만 89개에 이른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의 그래핀스퀘어 R&D센터에서 만난 홍 대표는 “이제는 수익을 낼 차례”라고 했다.

지난달 초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CES 디지털 기술혁신 기업인' 초청 행사 때 윤석열 대통령이 그래핀을 활용한 라디에이터를 살펴보며 홍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는 모습. /연합뉴스

홍 대표의 이력에서 미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현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와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김 교수는 러시아 학자들과 같은 2004년 그래핀을 분리, 노벨상 공동 수상자로 점쳐졌던 그래핀의 대가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수학한 홍 대표는 세계 최초로 산업용 그래핀 합성법을 개발,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리고 연구실을 나와 상용화에 뛰어든 것이다.

홍 대표는 메탄가스에서 추출한 그래핀을 구리에 증착(蒸着)시켜 얇게 뽑아낸 다음 구리를 떼어내 한 층의 그래핀만 양산하는 기술과 장비를 개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북 포항에 연간 그래핀 필름 약 10만㎡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그래핀스퀘어에는 올해가 본격적인 수익화 원년이다. 그래핀 샘플과 연구 장비를 수출해 연 매출 10억원 정도를 올렸지만, 이제는 그래핀을 적용한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것이다. 먼저 올 상반기 주방 가전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를 출시한다. 지난해 미국 타임지의 ‘올해 최고의 발명’으로 선정된 이 제품은 그래핀 박막이 끼워진 투명 유리판 두 겹으로 구성돼 있다. 홍 대표는 “빵·고기를 굽는 것은 물론이고 냉동 식품을 조리하거나 쿠키를 만들 수도 있다”며 “에너지 소모는 기존 제품에 비해 70%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올해 1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는 그래핀을 활용한 접이식 라디에이터로 가전 분야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섭씨 70~80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표면에는 다양한 홀로그램 영상을 띄울 수도 있다. 홍 대표는 “열사병 환자에게 부착해 열을 외부로 배출하는 치료 키트,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막는 냉각재,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사용하는 포토마스크에 먼지가 부착되는 걸 막는 차단막까지 그래핀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홍 대표는 “밀려드는 수요에 대비해 그래핀 생산량을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늘리고 다양한 사용 방안을 계속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