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3시쯤 서울 코엑스의 배터리 잡페어(채용박람회) 현장.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마련한 부스엔 취업 상담을 받으려는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구직자들은 인사 담당자에게 “올해 대학 졸업생도 채용하는지” “채용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좁은 복도는 채용 팸플릿을 펼쳐들고 서 있는 수십 명의 구직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배터리업계 취업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배터리 산업만큼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3사와 소재 업체들은 극심한 인력난 속에 치열한 채용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헝가리·폴란드 등 해외에 대규모 배터리·소재 공장을 지으면서 여기에 필요한 인력이 폭증해 연구 인력뿐만 아니라 현지 언어에 능통한 어문계 인재까지 서로 모시는 형편이다. 15~17일까지 2박 3일간 열린 ‘인터배터리 2023′는 참가 기업, 관람객 모두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작년보다 약 150% 많은 6만여 명이 전시회를 찾았다.
◇ 배터리 박람회의 잡페어, 사전 접수도 마감돼 대기 행렬… 뜨거운 배터리 취업 열기
잡페어엔 LG엔솔·SK온·삼성SDI 배터리 3사 외에 포스코케미칼·에코프로 등 소재 업체 14곳이 구직자들에게 직무와 인재상 등 멘토링을 제공했다. 일부 구직자들은 “사전 접수가 마감돼 현장 접수를 하려면 대기해야 한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작년보다 잡페어 규모를 2~3배 늘렸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는 인력 공급이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구인난이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년간 국내 배터리 3사는 신규 인력을 3000명 넘게 충원했지만, 여전히 일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연구 인력만 매년 3000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 세계 전기차 보급률은 2030년 전체 자동차 시장의 4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체들의 ‘인재 모시기’ 경쟁도 치열하다. 이날 잡페어에 참가한 기업들은 현장에서 추가 신청까지 받고, 부스 운영 시간을 늘려가며 최대한 많은 구직자를 만났다. SK온의 경우 사전 접수로 140명을 받았지만, 현장에서 추가로 160여 명을 받아 15~17일 기간 총 구직자 300여 명을 상담했다. SK온 관계자는 “특히 석·박사급 연구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한 명의 구직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당초 예정했던 부스 운영 시간도 1시간 가까이 연장했다”고 했다.
단기간 숙련된 인력을 배출하기 어려운 산업 특성상 국내 배터리업계는 산학 협력을 늘려 인재들을 입도선매하고 있다. LG엔솔은 연세대·고려대·한양대와 SK온은 한양대·성균관대·울산과학기술원과 계약 학과를 개설했다. 삼성SDI도 올해 1학기부터 성균관대와 배터리 인재 100명을 육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 간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외국 업체들도 높은 몸값을 제시하며 숙련 인력 스카우트에 나서고 있어 기존 인력 지키는 것도 비상이다”라고 말했다.
◇해외 공장 건설 늘자 ‘외국어 인력’도 절실
배터리업계 인력난은 기술·연구직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배터리사와 소재 기업들이 최근 헝가리·폴란드·북미 등에 대규모 공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현지에서 근무하거나 현지와 소통이 가능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인재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배터리 소재 회사인 에코프로는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헝가리어과와 지난달 ‘2차전지 산업 분야 글로벌 인재 발굴과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에코프로그룹의 양극재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은 헝가리 제2 도시인 데브레첸시에 97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한경민 헝가리어과 학과장은 “기업이 어문학과와 인재 발굴을 위해 MOU를 맺는 건 정말 드문 일”이라고 했다.
LG엔솔 등이 진출해 있는 폴란드 쪽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학과 학과장은 최근 LG엔솔 등 배터리 기업 인사팀으로부터 ‘학생들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최 학과장은 “배터리 회사들이 취업 공고를 낼 때마다 직접 인터넷 공고 사이트 링크를 보내고 회사 직원 중에 있는 우리 과 졸업생을 통해 홍보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