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한 업그레이드와 투자 규제를 예상했던 것보다 완화한 것은 동맹국의 공장까지 규제하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는 한국 정부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 산시성 시안 가오신구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삼성전자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당국이 과도하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시설 투자를 제한할 경우, 결국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스마트폰과 PC·TV 등 주요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중국에서 한국산 반도체의 경쟁력이 훼손되면 그 자리는 중국 반도체 기업이 대체하고, 결국엔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YMTC(양쯔메모리)를 선두로 빠르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뒤쫓고 있다. YMTC는 지난해 말 232단 최첨단 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이 올해 3.8%에서 내년 6.7%로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대표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도 지난달 24일 상하이교통대학(자오퉁대학)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지난 3년간 미국 제재로 타격을 입은 우리 제품 속 부품 1만3000여 개를 모두 중국산으로 교체하고, 회로기판 4000개를 재설계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나선 것도 미국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총 710만㎡(215만평) 부지에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장 5개를 구축하기로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당국이 삼성을 과도하게 옥죄면 200조원이 넘는 미국 투자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미·중 양국을 압박하는 좋은 카드가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가드레일 세부 조항과 관련해 “한국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미국 측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 사활을 건 만큼 오는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관련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