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파이엇 미 에너지자원국 차관보는 방한 중이던 지난 17일 서울 미국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한국 정부는 이미 잘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믹스’(에너지원의 다양화)를 위해 원전을 확대하려는 한국 정부의 강한 의지에 매우 놀랐다.”

제프리 파이엇(Geoffrey R. Pyatt) 미 에너지자원국(Bureau of energy resources) 차관보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제조업이 많고, 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한 환경도 아닌데, ‘에너지 전환’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생태계의 본질은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라며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파이엇 차관보는 지난 15~17일 한국을 방문해 외교부 등과 ‘한미 에너지안보대화’를 열고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과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미 에너지자원국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동맹국 간 에너지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 동시에 성공해야

파이엇 차관보는 “러시아로 인해 커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엔 비극이 있었지만, 유럽 등에선 ‘더 이상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위험을 알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러시아 같은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기 위해선 화석연료가 아닌 대안 에너지로 전환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과거 재생에너지는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기후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에너지 전환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파이엇 차관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러시아~북~한국’을 잇는 가스관 사업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이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여러 나라 간 더 큰 동맹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며 “미국 역시 한국과 계속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고, 한미가 함께 군사 훈련, 외교 협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협력 역시 우리 동맹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IRA, 한국 기업에 기회 될 것”

파이엇 차관보는 청정에너지 확대를 위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RA는 미국 정부가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 전기차 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기술·설비 등에 보조금 혜택을 주는 법안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 탄소포집 등 IRA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핵심 분야에서 이미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이런 한국 기업들이 IRA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IRA는 한국 기업에 환상적으로 ‘좋은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산 전기차가 IRA 세액공제 혜택 대상에서 배제되는 등 “IRA가 한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몇몇 한국 기업이 제기한 우려를 명확히 들었고, 이를 고려해 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미 재무부가 IRA 관련 세부 이행 규정을 계속 개발하고 있으니, 몇 주 안에 더 자세한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탈(脫)중국 배터리 공급망 핵심은 ‘다양성 구축’

미국은 청정에너지 사업의 필수 소재인 핵심 광물 분야에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EU(유럽연합)·한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협력체 핵심 광물 안보파트너십(Mineral Security Partnership·MSP)을 출범시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약 80%에 달하는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2030년까지 50%대로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중국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나라마다 단기간 탈중국 공급망을 꾸리기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파이엇 차관보는 “미국은 동맹국들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거나, 중국을 배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하려는 것은 다양성 구축이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했다.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 무기화·국유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이 자신들이 가진 자원의 혜택을 어느 정도 누리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여러 문제들을) 파트너십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제프리 파이엇(Geoffrey R. Pyatt)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석사와 예일대 국제관계학 석사를 받은 뒤 싱크탱크 ‘인터 아메리칸 다이얼로그(The Inter-American Dialogue)’를 거쳐 미국 외교부에 합류했다. 인도 주재 미국 대사관, 오스트리아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재 미국 대표부 등에서 일했고, 지정학적으로 에너지 이슈가 중요한 우크라이나와 그리스에서 각각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지난해 9월부터 미 국무부 에너지자원국 차관보를 맡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안보 문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