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조선소.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조선소의 9개 독(선박 건조장)에선 사람과 기계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장 큰 100만t급 독에선 LNG(액화천연가스)선 2척, LPG(액화석유가스)선 2척을 동시에 만들고 있었다. 아파트 36층 높이인 골리앗 크레인 10대도 선박 구조물을 날랐다. 2~3년 전 독이 텅텅 비고 인력을 줄이던 시기와는 정반대였다. 이영덕 현대중공업 상무는 “배 40여 척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며 “독에 공간이 없어 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친환경 선박 기술을 무기로 지난 2년여간 LNG, 메탄올 선박 수주 행진을 이어왔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올해부터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에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분야는 조선·자동차·2차 전지 분야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미래 친환경 산업에 올라탄 산업들이 반도체가 어려울 때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SUV와 친환경차 판매 확대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모두 역대 최대 매출·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양사의 총 영업이익은 17조원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5조7000억원)의 3배에 달했다. 자동차는 반도체를 대신해 한국 수출의 대들보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달 완성차와 부품을 합친 수출 금액은 76억2000만달러로 1위이던 반도체(59억6000만달러)를 크게 뛰어넘었다.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등 단가가 높은 친환경차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던 배터리 산업도 전기차 대중화를 맞아 국내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뒤, 지난해엔 1조2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SDI도 지난해 1조8000억원대 이익을 냈다. 양사는 올해 2조원대 이익이 예상된다. 미국 IRA(인플레감축법) 수혜를 받아 GM·포드·테슬라 등 미국 업체들의 발주가 늘고 있어 향후 전망도 밝다. SNE리서치는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주 잔고가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