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6시쯤 일본 도쿄 긴자의 한 카레 집. 10석 규모 식당 손님 10명 중 7명이 한국인이었다. 대기 줄에 서 있던 20여 명 중 10여 명도 한국인이었다. 이 가게 직원은 “지난달보다 외국인 손님이 줄었는데도 손님의 30~40%는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날 만난 우버 기사 사토시(聡)씨도 “앞서 태운 두 팀 모두 한국인 손님이었다”며 “요즘은 신주쿠, 오모테산도 같은 번화가가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나 한국어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56만8600명으로 전체 외국인(147만5300명)의 38.5%를 차지했다. 외국인 10명 중 4명은 한국인이었다.
해외여행이 빠르게 늘면서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은 물론 동남아·괌·사이판을 휩쓸고 있다. 대만 교통부 관광국에 따르면 지난 1월 대만을 방문한 외국인(25만4359명) 중 한국인(3만6536명)이 가장 많았다. 비행기로 4~5시간 거리인 괌 역시 2월 전체 방문 외국인(5만6141명)의 67%가 한국인으로 압도적 1위였다. 같은 달 베트남과 필리핀을 각각 방문한 외국인의 32.3%, 27.4%가 한국인이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해외 출국자 수는 178만2313명으로 전년 대비 12배 급증했다.
◇국내 LCC 9개, 인구 6.6배 많은 미국과 같아
해외여행 회복 속도가 빠르게 늘어난 데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많은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기준 국내 LCC는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을 포함해 총 9개다. 26일부터 3년 동안 노선을 운항하지 않던 이스타항공도 국내선을 시작으로 운항을 재개해 점차 노선을 늘려갈 예정이다. 국내 LCC 개수는 인구가 6.6배 많은 미국과 같다. 인구 1000만명당 LCC 개수는 한국이 1.75개로 미국(0.26개), 일본(0.65개), 중국(0.04개), 영국(0.89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국내 LCC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쌓였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쟁적으로 중·단거리 노선을 늘려오면서 해외여행 수요도 늘어났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인구나 국토 면적 대비 LCC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여행객 입장에선 가격이나 시간대 등 항공권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했다.
여행 업계에선 트렌드에 민감한 국민성도 해외여행 급증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골프 여행이 유행하면 골프 상품이 반짝 잘 팔리고, 일본 여행이 유행하면 그 상품만 판매율이 확 뛸 만큼 한국인들은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성향이 있다”며 “최근 해외여행 관련 TV 방송 프로그램이나 소셜미디어(SNS) 노출이 많았고, 여행사들도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많이 해 해외여행이 젊은 세대 사이에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코로나 확산세가 비교적 둔했던 한국에 대해 해외 관광지에서 “국민의 위생관념이 철저하고, 코로나를 잘 이겨냈다”는 좋은 인식을 가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이판이 우리나라와 가장 먼저 ‘트래블 버블’(접종 완료 시 격리 면제 제도)을 체결하는 등 해외 관광지에서 한국인에 대해 빠르게 입국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홍보 활동을 늘렸다는 것이다.
◇韓 방문객은 주춤…여행수지 적자 우려
반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지난 1월 43만4429명으로 같은 기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56만5200명)보다 적었다. 지난해 9월 33만7638명, 10월 47만6097명, 11월은 45만9906명, 12월은 53만9273명으로 늘던 방한 외국인 수는 올해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인 해외 여행객은 매달 급증하면서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는 주춤하면서 여행수지 적자 규모는 커지고 있다. 여행수지 적자는 지난 1월 14억9000만달러로 1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K팝 같은 한류 상품을 잘 이용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매력을 느낄 만한 관광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국이 리오프닝을 했으니,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국을 많이 방문했던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