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방산 5사의 수주 잔고가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었다.
2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대우조선해양, 현대로템 등 5사의 방산 수주 잔고는 작년 말 기준으로 101조216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주 잔고가 52조6586억원을 비롯해 KAI(24조5961억원), LIG넥스원(12조2651억원), 현대로템(방산 부문·5조2749억원)은 창사 이래 최대 수주 잔고를 기록했다. ‘K방산’은 작년 한 해 사상 최대치인 173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수주했고,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가 국방 예산을 늘리는 가운데 국내 방산 업체 무기가 성능과 경제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유럽·중동뿐 아니라 동남아·호주까지 무기 판매 영역을 넓히면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중동 넘어 호주·동남아시아까지
국내 방산 기업들은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철저한 납기 준수를 통해 해외 국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러·우 전쟁에서 주목을 받았던 LIG넥스원의 대전차 미사일 ‘현궁’은 미국제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비슷해 ‘한국판 재블린’이라 불리는 데 재블린보다 더 가볍고 정확성이 뛰어나지만, 가격은 3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현대로템이 3개월 일찍 폴란드에 K2전차를 조기 납품하면서 제작 공정에 대한 신뢰도 얻고 있다.
올해도 방산 기업의 수출 소식은 계속되고 있다. KAI는 지난달 24일 말레이시아에 FA-50 경전투기 18대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이집트와 전투기 46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와 K2전차 820대를 수출하기 위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방산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무기가 동남아에서 빠져나간 데 따른 최대 승자는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이 지역의 전통적 무기 공급 국가는 러시아였는데, 러·우 전쟁 이후 한국이 러시아를 대체할 무기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남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며 군사력을 키우는 호주에서는 한화에어로가 장갑차 ‘레드백’의 호주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방산 기업들은 해외에 수출 기지나 공장 설립을 계획하기도 한다. 풍산은 폴란드 방산 업체와 현지에 탄약 공장 건설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는 올해 상반기 유럽과 중동에 해외 수출 기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유럽 기지를 마련하고, 중동 기지 지을 곳을 물색 중”이라며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것”이라며 했다.
◇‘K방산’ 경쟁력 유지하려면, 새 수출 시장·주력 상품 발굴 필수
산업연구원은 27일 펴낸 보고서에서 “앞으로 10년간(2023∼2032년) 전 세계 국방 예산은 기존 전망치보다 2조달러(2600조원), 무기 획득 예산은 6000억달러(780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무기 시장은 매년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기존 방산 강국과 수주 경쟁은 만만치 않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영연방군을 중심으로 전통 방산 강국인 독일 업체를 밀어주려는 조짐도 있다. 지난달 노르웨이 전차 수주에선 현대로템의 K2 흑표전차가 독일 KMW의 레오파르트2A7 전차에 밀려 수주에 실패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방산 업체들이 최근의 호황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권역별 방산 수출 거점 국가를 확대하고, 새로운 수출 주력 제품을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하는 것을 기회로 삼아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무기 시장 점유율은 2013~2017년 대비 2018~2022년 각각 6%포인트,1%포인트 감소했다. 방산 업체 고위 관계자는 “국가마다 무기를 현지화해 납품해달라는 요구가 더 많아지고 있고 국가마다 원하는 게 모두 다르다”며 “이런 요구를 맞출 수 있도록 기존 수출 주력 제품 성능을 계속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