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쓰는 산업용 전기 요금이 주택용 요금보다 비싸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고압으로 송전되고 집집마다 들어가는 세밀한 배전망이 필요없는 산업용이 가정용보다 요금이 싼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막대한 한전 적자 문제 등을 수습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물가 인상을 우려해 주택용보다 산업용 요금을 더 올린 탓에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한전 적자를 줄이려는 과정에 산업계가 가정보다 더 강력한 유탄을 맞은 셈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비싸진 건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28일 본지가 한국전력의 1월 전력통계월보를 분석한 결과, 산업용 전기 판매 단가는 kWh(킬로와트시) 당 151.7원으로 주택용(145.3원)보다 6.4원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산업용 전기 판매액은 3조9241억원, 판매량은 2만5866GWh(기가와트시·1GWh=100만kWh), 주택용은 각각 1조512억원과 7236GWh로 집계됐다.
산업용·주택용 전기요금 역전은 지난해 10월 전기요금을 용도별로 인상률을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에 천문학적인 적자가 쌓이자 지난해 9월 말 반도체·철강·화학 등 대규모 업체에서 주로 쓰는 산업용(고압용) 요금을 16.6원(17.3%) 올리면서 주택용은 7.4원 인상에 그쳤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 서민 반발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을 용도별로 차등 인상하기는 2013년 이후 9년 만이었다.
이런 탓에 지난해 11월부터 산업용 요금이 주택용을 웃돌고 있다. 1월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는 연간 기준으로 2019년 이후 4년 만에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천연가스·석유·석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오히려 원가가 싼 산업용을 주택용보다 더 올려 요금 체계가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주택용은 손대지 않고 산업용만 크게 올린다고 한전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달 말 2분기 전기 요금 결정 때에는 원가를 반영한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