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에 있는 태양광 발전 설비. 최근 몇 년 사이 전남을 비롯한 호남 지역에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증하면서 갑작스러운 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이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강제로 끄는 출력 제어가 일어날 전망이다. 전기를 실어나르고 저장할 송·배전망 건설과 ESS(에너지저장장치) 설치는 외면한 채 태양광 확대에만 열중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근 기자

봄철을 맞아 호남(광주·전남·전북) 지역에 때아닌 전력 수급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전력 위기는 무더위와 강추위에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겨울철에 왔지만, 전력 수요가 가장 적은 봄철에 전력 비상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원인은 갑작스럽게 늘어난 태양광 탓이다. 태양광 발전 설비는 폭증했지만 정작 생산한 전기를 실어 나를 송·배전망 건설이나 남는 전력을 저장해 놓을 ESS(에너지저장장치) 보급은 외면한 탓에 전력 과부하 우려가 커진 것이다.

호남 지역 태양광 설비는 2016년 말 1751MW(메가와트)에서 현재는 5배 이상인 9371MW로 급증했다. 원전 10기와 맞먹는 규모다. 전력은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도 송·배전망에 문제를 일으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 전력망은 전국적으로 연결돼 있어 발전소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대규모 정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1일부터 햇빛이 많은 날에는 태양광 과잉 발전을 막기 위해 호남 지역 태양광을 강제로 줄이기로 했다.

태양광 보급 과속으로 호남 지역 전력 수급이 불안해지자 최근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원전은 주말이면 발전량을 줄이고 있고, 이 지역 태양광 발전소도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햇빛이 잘 드는 한낮에는 강제로 발전기 전원을 끄는 방식(출력 제한)으로 생산을 멈춰야 할 판이다. 날씨에 의존하는 태양광 발전은 원전·석탄 발전소와 달리 전력 생산을 단계적으로 조절할 수 없어 정전과 같은 위험에 더 취약하다.

◇비싼 태양광 돌리려 싼 원전 줄이는 코미디

5일 산업부와 한전,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6년 말 전국적으로 3716MW에 그쳤던 태양광 발전 설비는 올 4월 2만1981MW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전체 태양광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호남 지역에선 같은 기간 1751MW에서 9371MW로 급증했다. 자가용 태양광까지 더하면 전국 태양광 설비는 26.4GW로 우리나라 원전 전체 설비 용량(24.65GW)을 웃돈다.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긍정적이다. 하지만 설비 용량만 커졌을 뿐 태양광은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간헐성이 큰 단점이다. 봄철에는 전력 수요는 많지 않은데, 햇빛은 좋다 보니 태양광 발전량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실제 햇볕이 가장 좋은 낮 12~1시 사이에는 전력 생산은 태양광이 원전을 웃돌고 있다. 지난 2일과 3일 낮 12~1시 사이 태양광 출력이 20.5GW, 20.7GW를 기록하는 동안 원전은 19.6GW, 19.9GW를 나타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3월 이후 이 같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낮 시간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웃돈다”고 했다.

봄철 태양광 발전이 늘다 보니 호남 지역에서는 지난달부터 발전 단가가 4배 가까이 비싼 태양광발전을 계속 돌리기 위해 발전 단가가 가장 싼 원전 발전을 줄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주말인 지난 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빛원전 2·3호기 발전량을 평소보다 15% 안팎 줄였다. 비싼 태양광을 돌리려고 원전 발전을 줄인 탓에 5시간 동안 발생한 한전 손실은 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전력망 확대, ESS 팽개치고... 태양광 늘리기만

태양광이 폭증한 2019년 이후 전남 지역에서 도(道) 바깥으로 확충된 송전 선로는 없고, 태양광발전의 필수 설비로 꼽히는 ESS도 지난해 1년 동안 5곳, 1MWh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 태양광 업체 대표는 “ESS 관련 화재 사고가 계속되다 보니 투자를 하고 싶어도 보험을 들 수도, 은행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부터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05GW 규모의 태양광 전기 생산을 중단하는 출력 제어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날씨가 화창해 태양광발전이 크게 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정전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기 생산·판매 기회를 강제로 빼앗기게 된 업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부는 해외도 보상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석탄발전과 같은 다른 발전소와의 형평성을 감안해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태양광 과잉 문제 해결을 위해 호남 지역에서 남는 전력을 HVDC(초고압 직류 송전)를 통해 수도권으로 곧바로 보내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호남에서 충청권을 건너뛰어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경기 용인을 비롯해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를 호남 지역에 유치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지역에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수요처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