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전문 기업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1조1609억원)을 달성했다. 수출 호조 덕분이었다. 작년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경동나비엔은 북미·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 47국에 보일러와 온수기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무역의 날에는 업계 최초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농기계 전문 기업 대동의 북미 시장 주력 제품 CK트랙터. 대동은 지난해 매출 1조4637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는데, 이 중 약 83%를 수출로 거뒀다. /대동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 적자는 472억달러(약 62조원)에 달했다. 14년 만에 첫 적자였던 데다가 규모로도 사상 최대였다. 최근 13개월 연속 무역 적자가 이어지고, 수출도 6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한국 경제 버팀목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이런 어려운 대외 무역 환경 속에서도 일찌감치 수출에 눈을 돌려 성과를 내는 국내 중견 기업들도 있다. 경동나비엔(보일러·온수기), 대동·TYM(농기계), 코웨이(정수기 렌털), 쿠쿠(전기밥솥) 등이다. 이 기업들은 국내 내수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기술력과 현지화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 무역적자 최악 상황이지만, 일찌감치 해외로 눈돌려 성공한 ‘K名家’ 중견기업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 거둔 호실적에 대해 “품질 경쟁력과 현지화 전략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했다. 국가별로 난방 문화와 인프라가 다르다는 특성을 고려해 현지 시장 맞춤형 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큰 탱크에 물을 데운 후 필요할 때 사용하는 저탕식 온수기를 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식구 한 사람이 온수를 많이 쓰면 다음 사람은 그만큼 온수를 쓰지 못하고 물을 데우는 시간도 오래 걸려 에너지 효율이 낮다. 반면 한국의 콘덴싱 온수기는 보일러를 작동했을 때 발생하는 배기가스 열을 재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물을 데울 수 있다. 경동나비엔은 2008년 북미 시장에서 한국식 콘덴싱 온수기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08년 당시 연간 2만대 수준이었던 북미 콘덴싱 온수기 시장은 지난해 80만대로 40배가량 성장했다.

경기도 평택 경동나비엔 서탄공장에서 물류 공정에 배치된 로봇이 보일러를 수출국별로 분류해 적재하고 있다. /경동나비엔

국내 시장 대비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또 하나의 분야가 농기계다. 국내 농기계 1·2위인 대동과 TYM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1조4637억원, 1조166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기업들 매출 절반 이상이 미국 시장에서 나왔다. 연평균 성장률 1.7% 정도로 정체된 국내 농기계 시장 대신 넓은 정원과 마당이 있는 집이 많은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확산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정원과 농장을 갖춘 집주인들의 수요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철저한 현지화… 제조 과정 할랄 인증까지

이 기업들은 십수 년 전부터 해외 진출에 주력해온 만큼 현지화 전략에도 공을 들였다. 밥솥이 주력인 쿠쿠는 중국·베트남·북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중국 청도복고전자·심양홈시스·요녕전자 3개 법인의 2022년 매출은 924억원으로 전년보다 35% 늘었다. 쿠쿠 측은 “중국 시장에서는 소비자들 취향에 맞춘 다양한 레시피와 중국어 음성 안내 기능을 추가하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된 현지 시장에 맞춰 온라인 플랫폼 T몰·JD·틱톡 등과 직거래를 늘렸다”고 했다.

코웨이는 지난해 전체 매출 3조8561억원 중 1조4019억원이 해외법인에서 발생했고, 이 중 말레이시아 법인 매출액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코웨이 관계자는 “2000년대부터 현지에 진출해 방문 판매 위주로 정수기 렌털 시장을 공략해왔고, 무슬림 국가라는 말레이시아 특성을 고려해 필터 등 각종 부품 제조 과정에서 할랄 인증을 통과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