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13개월 연속 적자인 상황에서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자동차가 9년 만에 반도체를 제치고 무역 흑자 1위 품목에 올랐다.

현대차가 지난 5일(현지 시각) 뉴욕 오토쇼에서 소형 SUV인 신형 코나를 공개하고 있다. 자동차는 최근 고부가가치 차량 수출 증가에 힘입어 올 들어 반도체를 제치고 무역 흑자 1위 품목에 올랐다. /EPA 연합뉴스

1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자동차는 지난 1~2월 무역 흑자 79억2100만 달러(약 10조원)로 1위에 올랐다. 2개월이지만 자동차가 무역 흑자 전체 1위에 오른 것은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무역 흑자 6위 품목인 자동차 부품까지 합치면 자동차 산업이 낸 무역 흑자는 105억달러에 이른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무역수지 1위였던 반도체(18억9900만달러)는 8위로 내려앉았다. 무역수지에서 자동차가 반도체를 제치고 1위를 하는 것은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2014년엔 반도체 불황의 반사 효과가 컸지만, 올해는 현대차그룹의 호실적도 크게 작용했다.

◇SUV·고급차·친환경차 효과로 수출 단가 상승

1~2월 자동차 무역 흑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7.2% 늘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수출액의 88%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차량의 수출 단가 상승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먼저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신차 공급난에 따른 완성차 업계의 가격 인상 물결에 올라타 차량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지난해 현대차의 국내 승용차 평균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273만원 오른 5031만6000원으로 처음으로 5000만원을 돌파했는데, 해외에서도 비슷한 가격 인상이 적용됐다. 여기에 단가가 높은 SUV, 고급차 제네시스, 하이브리드·전기차 판매가 늘면서 수출 금액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북미·EU(유럽연합) 같은 선진 시장 수출이 늘어난 것도 고무적이다. 올 1~2월 자동차 수출은 42만1668대로 22% 늘었는데, 북미에서 41%, EU에서 18% 급증했다. 최근 국내에서 수입차 입지가 강화되며 자동차 수입(26억5700만달러)이 25% 증가했지만, 무역 흑자가 늘어난 건 한국 자동차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작년 4분기부터 미국에서 처음으로 판매 4위에 오르며 미국 완성차 ‘빅3′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를 제쳤다. 1분기에도 18.5% 증가한 38만2354대를 팔아 GM·도요타·포드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여파로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전기차 판매는 정체했지만, 투싼·아반떼·K3·스포티지 같은 차종 판매가 각각 20~40% 증가했다. 특히 제네시스는 미국 판매가 17.5% 증가했는데 GV70 전기차를 제외한 제네시스는 전량 수출되고 있어 무역 흑자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2월 유럽에선 1.1% 증가한 16만2835대를 판매했는데 이 중 약 1만대가 한국에서 수출한 고단가 전기차(아이오닉5·아이오닉6·EV6)였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현대차그룹은 최근 각종 자동차상을 휩쓸며 저가 자동차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어 기업의 수익과 무역 흑자도 함께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수출, 올해까진 전망 밝아

수출 중심인 한국GM과 르노코리아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GM은 지난 2월부터 창원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 소형 SUV 트랙스크로스오버가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지난달까지 2만대를 수출했다. 주력 수출 차량인 트레일블레이저까지 합친 지난 1분기 수출량은 7만9386대로 전년 동기의 1.5배에 달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도 XM3를 중심으로 유럽 수출을 늘리고 있다. 르노코리아의 올 1분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5% 증가한 2만5846대다.

올해 자동차 수출 전망은 밝다. 지난해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 여파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0만대에 이르던 현대차의 글로벌 주문 잔량은 최근 60만대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대기자가 많다.

다만 최근 미국발 금리 인상 기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자동차 수요 둔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은 불확실성 요인이다. 현대차의 신차 주문 시 차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작년 말까지는 대부분 6개월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2~3개월 수준으로 짧아졌다.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자동차 산업의 연구 개발 투자가 나라별, 기업별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수출 호조를 유지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