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16일(현지 시각) 0시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며 ‘원전 0(제로)’가 됐다. 1961년 6월 바이에른주 칼에서 첫 원전이 상업 운전을 시작한 지 62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 정책을 선언한 지 12년 만이다. 원전을 5기 이상 가동한 국가 중 완전한 탈원전에 이른 국가는 독일이 처음이다.

16일 외신에 따르면 이번에 가동을 멈춘 원전은 1988년부터 가동한 이자르2와 엠스란트, 1989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네카베스트하임 2 등 3기다. 설비 용량은 모두 4.2GW(기가와트). 지난해 말 폐쇄 예정이었지만 겨울철 에너지 공급난을 감안해 이날까지 한시적으로 연장됐다.

독일은 16일(현지 시간) 0시를 기해 이자르2, 네카베스트하임2, 엠스란트 등 원전 3곳의 가동을 최종적으로 중단했다. 사진은 작년 8월 22일 네카베스트하임2 원전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연합뉴스

지나친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했던 독일이 탈원전으로 ‘에너지 안보’에 더 큰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원전 추진’ 움직임에 독일만 거꾸로 간다는 것이다. 독일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에너지 전환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 부담과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탈원전을 되돌릴 수 없는 독일이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까지 겹치며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전력 수급 문제로 독일 산업에도 빨간불이 예상된다”고 했다.

독일은 이날 마지막 남은 원전 전원마저 내리면서 탈원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탈원전에 반대했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 10년 넘게 진행된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와 낮아진 경제성 탓에 기술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 독일은 탈원전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에너지 안보 위기는 한층 커졌지만 경제성·환경성을 모두 갖춘 원전을 제외하면서 에너지 믹스(전력원 구성)의 선택지를 독일 스스로 차버린 결과가 됐다. 옥스퍼드대는 보고서에서 독일의 탈원전으로 대기오염과 같은 피해의 사회적 비용이 연간 30억~80억유로(4조3000억~11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62년 만에 원전 꺼진 독일

◇에너지 위기 커졌지만… 탈원전 10년에 선택지 줄어

독일에너지·수자원협회(BDEW)에 따르면 1990년대 말 30%에 육박했던 원전 비율은 이젠 제로가 됐다. AFP는 “독일이 탈원전으로 부족해진 전력 생산을 재생에너지를 통해 충당할 계획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독일 전력 생산에서 풍력·바이오매스·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44.6%에 이른다. 재생에너지 비율은 탈원전 정책 이후 급증했지만 최근 수년간 40% 중반에서 정체된 상황이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 능력이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선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내부에서도 탈원전에 반대 여론이 높다. 지난주 초 독일 여론조사 업체인 포르사연구소 조사에서 탈원전 반대 여론은 3분의 2에 달했다. 탈원전을 지지하는 여론은 28%에 그쳤다.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원전 공백을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채울 것이란 전망도 탈원전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은 원전 3기의 전기 생산량을 재생에너지는 물론 가스와 석탄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원전 가동중단 말라”- 15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내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서 독일의 마지막 원전 3곳 가동 중단에 반대하는 친원전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평화, 사랑, 원자력’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석탄 발전 비중 높아져… 해외에서 에너지 수입

독일은 가스·원유·석탄의 90%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에 대한 의존이 심했는데, 가스는 55.2%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석탄과 원유도 각각 56.6%와 33.2%에 달했다. 독일이 탈원전을 강하게 밀어붙인 데는 러시아를 믿는 구석이 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러시아 대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미국과 카타르산 LNG(액화천연가스)를 수입했지만 가뜩이나 폭등한 가격에 수입액은 급증했고, LNG 터미널 신규 건설에도 지출이 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여름 독일은 일시적으로 전기 요금 거래 가격이 MWh(메가와트시)당 995유로(약 143만원)로 전년 대비 10배 오를 정도로 폭등하며 소비자 부담을 키웠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셋째로, 가스 요금은 넷째로 비싸다. 부족한 전기를 해외에서 사오는 독일의 정책 자체가 모순이란 비판도 나온다. 독일이 전기를 사올 수 있는 유럽 국가 중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등 9국에서 원전은 최대 전력원이고, EU(유럽연합) 전체에서도 원전 비율은 25%로 천연가스(20%), 석탄(14%)을 앞선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독일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수출한다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 전기는 원전에서 만든 프랑스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