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인천~런던 직항 노선으로 7박 8일 영국 여행을 갔다 온 이모(34)씨는 올해 다시 영국행 비행기표를 끊으려다 깜짝 놀랐다. 2019년 당시 여행 3개월 전에 구매한 왕복 항공권은 95만3100원(세금과 유류할증료 포함)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인데도 올해는 150만~200만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항공권이 구매 시기나, 출·도착 시간 등에 따라 가격이 모두 다르다고 하지만 1.5~2배까지 차이 날 줄은 몰랐다”며 “다시 여행 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속속 정상화하고 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항공권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항공사들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단했던 국제노선을 정상화하고 있지만, 비행기 좌석 공급이 여객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항공권 가격이 치솟은 탓이다. 여기에 유류할증료·인건비 상승도 항공권 가격이 비싼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미리 항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항공권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항공사들이 서비스 개선은 하지 않으면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손실을 만회하려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는데도 항공기는 늘리지 않고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
◇국제선 항공권, 코로나 이전보다 20% 비싸
항공권 가격은 구매 시기, 잔여 좌석 수, 이착륙 시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선 항공권은 2019년보다 20%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인 문모(32)씨는 2019년 6월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을 111만2200원에 샀다. 그런데 올해 6월 파리행 왕복 항공권은 200만~250만원을 줘야 하고, 1회 경유하더라도 최저가가 120만원 수준이다. 1년에 서너 차례 비즈니스 목적으로 인천~시애틀(미국) 노선을 이용하는 진모(50)씨는 지난 1월에 늘 타던 대한항공 대신 미 델타항공을 이용했다. 진씨는 “같은 노선, 비슷한 날짜와 출·도착 시간이지만 대한항공은 200만원대, 델타항공은 170만원대였다”고 했다.
항공권 가격이 예전보다 비싼 건 해외여행 수요 증가 속도보다 항공사의 좌석 공급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3월 국내 항공사의 국제선 좌석 공급은 199만4477석으로, 2019년 3월(318만6162석)의 62.6%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여행객은 64.1%까지 회복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주로 운영하는 장거리 노선은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다. 대한항공의 미주노선 공급 좌석은 2019년의 90% 수준으로 회복됐는데, 여객 수는 9% 증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편성이나 승무원, 현지 공항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항공권을 예약과 판매까지 시간이 걸리다 보니 항공기 좌석을 빠르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항공권 수요가 많이 몰리다 보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각종 비용 상승도 항공권 가격이 오르는 데 한몫했다.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여행 거리에 따라 대한항공이 1만6800~12만3200원, 아시아나항공은 1만7000~9만6800원으로 3년 전의 두 배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항공사들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단했던 각종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조업 인력 인건비, 서비스 재계약 비용 등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또 2019년엔 항공사들이 노선 점유율을 높이려는 경쟁을 벌이면서 ‘초저가’ ‘땡처리’ ‘0원 항공권’ 등 각종 프로모션 항공권을 공격적으로 출시한 탓에 지금 소비자가 느끼는 항공권 체감 가격이 더 커진 측면도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항공사 서비스는 부실, 안전사고 빈번
항공권은 비싸졌지만 정작 서비스는 이전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소비자들 사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최근 1마일리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마일리지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개악(改惡) 비난에 시행을 잠정 보류했다. 여전히 승무원이 20%가량 휴업하는 상황에서 기내 신문 제공 서비스와 일부 구간 음료 제공 서비스가 사라졌다.
각종 사건·사고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기내에서 실탄이 발견되고, 대한항공에서만 1년 사이 기체 결함, 엔진 이상 등 10여 차례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11월엔 김포~제주 노선을 운항하던 티웨이항공 여객기가, 지난 9일엔 인천~코타키나발루 노선 제주항공 여객기가 기체 결함으로 회항·지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