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60만원을 주고 구매한 전기 자전거를 택배로 전달받고 나서야 자전거 본체에 무언가로 찍힌 흔적이 있고 앞바퀴 부속 일부가 깨진 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환불을 요구했지만, 판매자인 B씨는 “자전거를 타는 데 문제 될 만한 파손이 아니지 않으냐”라고 거부했다. 결국 이 다툼은 중고 거래 사이트 운영업체의 중재 시도 실패 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내 전자문서·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분쟁위)로 회부됐다. 이를 넘겨받은 분쟁위는 A씨의 전액 환불 요청을 기각했다. 대신 분쟁위는 “찍힘 정도가 경미하고 깨진 부속은 1만원 미만의 비용으로 교체가 가능하다”며 “판매자(B씨)는 구매자(A씨)에게 2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결정했다.

분쟁위가 이달 초 발간한 ‘안전한 개인 간 전자거래를 위한 가이드북’에 소개한 실제 분쟁 사례다. 중고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가운데 거래 당사자 간 분쟁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08년 4조원에 불과한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24조원을 기록했다. 거래를 중개하고 광고 등으로 수익을 얻는 플랫폼들의 덩치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당근마켓이 매출액 499억원, 번개장터 305억원, 중고나라 101억원 등 3사 합계 매출이 90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대형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분쟁위로 회부되는 개인 간 분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9년 535건이던 분쟁 건수는 2020년 906건, 2021년 4177건, 작년 4200건까지 늘어났다. 사이트별로는 지난해 기준 당근마켓(1364건), 번개장터(1037건), 중고나라(846건) 순이었다.

◇4년 사이 분쟁 약 8배 늘어

개인 간 중고 거래는 쇼핑몰과 같은 사업자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전자상거래와 달리 소비자 보호 장치가 약하다. 대표적인 것이 ‘청약 철회’ 규정이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은 온라인에서 물품을 산 소비자가 계약서 수령 후 7일 내 청약 철회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중고 거래 판매자는 일반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실제로 중고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갈등은 KISA 분쟁위에서 집계된 건수보다 휠씬 더 많다는 지적이다. 분쟁위에 집계된 사례들은 각 중고 거래 사이트 운영업체가 시도한 자체 조정에 실패해 넘어온 경우이기 때문이다. 당근마켓만 해도 자체 조정 비율이 91%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발생하는 분쟁 건수는 연간 1만3000건 이상으로 추산된다. 당근마켓은 자체 심의위원회에서 1~2차 조정이 결렬될 때 KISA 분쟁위로 사건을 이관하고, 번개장터도 유사한 2단계 심의를 운영한다. 일단 분쟁위로 넘어와 조정이 성립하면 민사소송법에 따라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부모의 물건을 무단으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린 미성년자로부터 구매를 했다가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민법상 미성년자의 행위는 부모가 취소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미성년자와 거래를 한 구매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가령, 미성년자 판매자가 물건을 판 돈을 유흥비에 썼거나, 부모 위임장을 위조하는 등 ‘적극적 속임수’를 썼을 경우다. 이때 구매자는 자신이 산 물품을 미성년자의 부모에게 돌려줘야 하지만, 자신은 미성년자에게 남아있는 돈만 돌려받도록 돼있기 때문에 자칫 전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불필요한 분쟁 예방하려면…

중고 거래를 할 때는 거래 불가능한 상품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식품, 한약, 의료기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물품은 정부에서 제조나 판매 허가를 받은 사람만 판매가 가능하다. 화장품 샘플은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니므로 중고 거래 대상이 아니다. 수제 비누도 화장품 제조 허가를 받은 사람만 팔 수 있다. 그 외에 술과 담배 등도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거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꼼꼼하게 중고 물품의 상태와 사전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동진 분쟁위 선임연구원은 “물품 대금은 현금보다는 에스크로 등을 이용하고, 구매 당시 물건의 하자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사전에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단비 당근마켓 매니저는 “물품 설명에 없는 하자가 발견될 경우에는 즉시 판매자에게 알리고, 분쟁이 발생하면 조정 절차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