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전력 서울본부 현판과 오피스텔 건물 내 전기 계량기의 모습./뉴스1

지난해 32조6000억원이 넘는 적자에 시달리며 자구책을 내놓을 예정인 한전 안팎에서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이른바 ‘줬다 뺏는’ 행태에 잡음이 커지고 있다.

27일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한전 한 직원은 사내 공지를 촬영한 사진과 함께 회사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해당 공지에는 “오는 4월28일(금) 지급할 예정이었던, 근로자의날 기념일 지원비(온누리상품권 10만원)는 지급 중지하기로 본사방침이 정해졌다고 합니다”라며 “이에 따라 배부 드렸던 상품권을 다시 회수하고자 합니다”라고 적혔다.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선 자구책, 후 요금 인상’ 요구가 강해지자 애초 지급하기로 했던 근로자의 날 기념일 지원비 지급을 취소한 것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열린 에너지 정책 토론회에서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고 그런 부분은 이견이 없다”면서도 “국민 동의를 받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달라는 차원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에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구조조정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국민에 요금 인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그런 자구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한전이라는 회사 정말 정떨어진다”며 “점심시간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상품권을) 등기로 보내드렸는데 환불기한이 있어 빨리 내놓으라고 한다. 우체국서 빠른등기로 보내신다는데 현금으로 그냥 내겠다고 해도 안된단다”는 댓글이 달렸다.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적자 원인은 전기 요금 인상 지연인데 급여 반납, 자구노력 등 직원들 잘못인 것처럼 원인으로 찾는데 대해 수긍하지 못하겠다”, “흑자일 땐 더 주지도 않으면서 적자라고 급여 복지를 축소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편, 한전 측은 공식적으로는 상품권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로 일부 부서와 지사가 관례에 따라 미리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 10만원은 해마다 근로자의날마다 지급해왔다”면서도 “지급 전에 중단한 것으로 지급했다가 뺏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품권 회수를 공지한 한전 게시판 캡처./인터넷 커뮤니티

2021년 5조8465억원, 지난해 32조6552억원 적자를 낸 한전은 올해도 10조원인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올 들어 넉 달 동안 회사채 발행도 10조원에 육박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전은 앞서 지난 21일엔 올해 임금 인상분과 성과급 반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 직원이 1.4%인 임금 인상분을 반납하면 총 294억원, 임원부터 차장직급까지 5200여명의 성과급을 반납하면 35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 총 2만2694명인 한전 직원 전원에게 근로자의날 지원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27억원을 아낄 수 있다.

정치권의 무조건적인 자구책 요구가 공기업 한전을 경영난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기 저하와 불만까지 유발하는 모양새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전 전 임직원의 임금을 모두 회수해도 2조원 안팎”이라며 “국가 경제에 끼치는 한전 적자 영향이 엄청난 상황에서 자구책만 앞세우며 요금 인상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