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이 됐다.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산업은행에 넘어간 지 23년 만이다. 한때 글로벌 조선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분식회계와 방만 경영으로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서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던 대우조선이 결국 민영화되는 것이다.
공정위는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및 한화시스템 등 5개 사업자가 대우조선 주식 49.3%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 EU(유럽연합)에 이어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마지막 문턱을 넘은 것이다. 다만 공정위가 이날 조건을 단 것은 ‘방위산업’ 부분이다. 함정부품(전략 무기) 13개 시장에서 점유율이 81.6%에 달하는 한화가 대우조선에만 정보를 주거나 경쟁사보다 부품을 싸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또 한화가 다른 조선업체로부터 얻은 영업비밀을 대우조선에 줘서도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한화는 공정위 결정에 대해 “경영상 제약이 있지만 대우조선의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로 그동안 한국 조선업의 고질적 병폐로 꼽혔던 저가 수주 경쟁이 사라지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7조1000억 투입, 세금 먹는 하마
한화는 2008년 대우조선 첫 매각 때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이후 대우조선은 매각 실패에도 글로벌 조선업 호황 덕분에 좋은 실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2010년대 초 글로벌 경기 부진 속에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해양플랜트 부실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에도 후판 가격 인상, 글로벌 경기 둔화에 더해 코로나까지 겹치며 2021년과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규모가 1조5000억원을 웃돌았고, 작년 말 부채 비율은 1542%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정부의 자금 지원이 수차례 이어졌지만 밑 빠진 독이었다. 2015~2017년 사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7조1000억원을 투입했지만 회복은 쉽지 않았다. 2015년엔 임원 수를 30% 줄이고, 2016년엔 8대 쇄신 플랜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대우조선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커지며 정상화의 길은 멀어졌다. 주인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심해졌다.
역대 정부는 대우조선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원칙 없는 구조조정으로 매번 ‘일단 살려 놓고 보자’는 땜질식 처방만 반복하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비판도 받았다.
◇기술력·영업력 회복 시급
한때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의 주력 계열사 대우조선이었지만, 그룹 공중분해와 함께 주인 없는 회사로 23년간을 보내면서 체력은 크게 떨어졌다. 정권에 따라 경영진이 바뀌는 불안정한 리더십 아래에서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2012년 말 1만2781명에 이르던 직원 수는 지난해 말 8629명으로 쪼그라들었다. 10년 전 7700만원에 이르던 1인당 평균 급여는 지난해 7300만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선박 수주는 작년 1분기 42억달러에서 올해 8억달러로 급감했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군함 분야조차 신예 FFX급을 비롯한 수상함 수주 실적이 지난 5년간 한 척도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대우조선이 그동안 쌓은 선박 건조 경험과 기술력은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잠수함과 군함을 비롯한 방산 분야 경쟁력이 강점이다. 국내 조선업체 중 처음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잠수함은 후발 경쟁 업체보다 건조 경험이 두 배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 관심이 커지는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도 건조와 수주 모두, 전 세계 1위다. VLCC(초대형 유조선) 또한 마찬가지다
한화가 그룹 차원에서 강점을 지닌 우주·방산·에너지 분야와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어느 기업이든지 혁신과 신시장 진출을 위해선 리더십이 중요한데 대우조선은 20여 년 동안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었다”며 “조선과 방산 모두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에서 한화로의 인수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